조씨는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생각하면 돌아올 수 있음을 알았다.
아버지의 기운은 속(俗)에서 수련중인 기운이므로 자신을 속의 세계로 인도해 줄 수 있음에 대하여는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아버지의 기운은 할아버지의 기운에 비하여 상당히 진하고 자신을 떠내려보낼 만큼 강하였다.
이것이 선계와 속계의 기운의 차이임에 대하여는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분명히 아버지의 기운이 자신에게 더 가까이 와 닿고 있었다.
"아버지."
지금 있는 곳은 주변의 온도가 차지도 덥지도 않았다.
느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완벽하게 온도가 인체에 적합하도록 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니 조정이라기보다 원래 그렇게 적당한 온도였으므로 느낌이 없었던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상태, 인간이 생기기 전의 주변 조건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지상에서 가장 비슷한 상태를 든다면 엄마의 뱃속이 그럴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런 조정도 필요치 않은 상태.
옷을 입지 않아도 춥지 않고,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으며,
체중까지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중력 상태도 아닌, 어떠한 생각을 하여도 편안한 상태...
너무나 편안한 상태, 바로 이러한 것이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속계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 역시
계속 머리 속을 채워오고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것이다. 조씨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다시 한 번 아버지의 기운이 전달되며, 서서히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싸늘한 저녁 기운이 닭살이 돋은 피부를 통해 전해져 왔다.
저녁 무렵 어슴프레한 들녘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왜 여기에 있었을까?
"많이 피곤하였던 모양이구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졸길래 아버지도 여기에 있었지."
들일이 끝나고 들어가야 할 시간인데 조씨가 졸면서 선계를 돌아보고 있었음을 아시고 계셨던 아버지는
깨우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은 이후 조씨는 점차 호흡이 되어가고 있었으나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부터는
점차 수련을 게을리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조씨는 결혼을 하고 나서는 수련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용을 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아직 그때의 기운이 자신의 몸 어딘가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용이 보일 리 없는 것 아닐까?
이 용이 바로 며느리가 보았던 그 용일까?
조씨의 머리 속에는 순간에 너무나 많은 생각이 지나가고 있었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일러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기계(氣界)의 현상을 볼 때는 절대로 두려워하면 안 된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후
다시 한 번 눈을 뜨고 바라보면서 천천히 대화를 나누도록 해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네가 생각하는 대로 풀릴 것이다."
조씨는 용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용의 눈동자가 다정스레 다가왔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 눈동자가 점점 커져왔다.
화등잔만하였던 눈동자가 접시만하게, 접시만하였던 눈동자가 대접만하게,
대접만하였던 눈동자가 다시 물동이만하게, 다시 다라만하게 커지고 있었다.
그 눈동자 속에 이 세상이 들어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희노애락애오욕의 모든 것이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용의 눈동자는 이 세상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조씨는 이 용이 바로 이 세상을 자신에게 보여주려는 신의 뜻임을 알았다.
신은 자신에게 무엇인가 전하려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전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알 것 같았으나
반드시 무엇인가 전하려 하는 것이 있음이었다.
그것은 바로 며느리가 본 그 용이 자신의 집안에 태어날 엄청난 후손임을 조씨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큰 일이 벌어지겠구나!
대단한 손자가 태어날 것 같았다.
며느리는 원래 마음이 곱고 솔직하였다. 그 애가 거짓말을 할 리는 전혀 없었다.
아마도 무엇인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집안에 경사가 날 것이다. 경사도 보통 경사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손자는 아마도 집안을 일으켜 세울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리라.
조씨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며느리가 산기를 느끼자 집 주변에 서기가 어리기 시작하였다.
해질녘, 집 주변을 안개와 같은 것이 에워싸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보지 못하던 안개가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집 주변을 둥그렇게 에워싸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보일 듯 말 듯 하던 안개가 점점 진해지며
밖에서 집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진하게 둘러싸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상할 만치 연기와 같은 것이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연기와 같이 보였지만 연기는 아니었다.
연기라면 숨을 쉬기 불편할 것인데 호흡을 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출산 시간이 다가오자 연기와 같은 기운 속에 무지개 빛이 어리는 것이었다.
해산 시각이 다가옴에 따라 점점 무지개 빛이 진해져 왔다.
살아있는 무지개 빛이 진해지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그 빛이 한 곳으로 모이며
집 주변을 360도로 돌기 시작하였다.
도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드디어는 광속으로 돌기 시작하였다.
광속으로 돌던 빛줄기가 한 점으로 모이는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우주 전체를 누비기 시작하였다.
우주 전역을 누비던 빛의 점은 어느 순간 이진사의 집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진사의 집은 아직 구름과 같은 기운에 쌓여 있었다.
그 속으로 기운의 빛이 서서히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한 점으로 모인 빛이 점점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한 개의 별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광기(光氣)는 처음에는 서서히 움직였으나
점차 빠른 속도로 그러나 직선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 사방으로 이리 저리 돌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리 저리 도는 모양이 어떠한 형체를 이루는가 싶더니
오각뿔형의 별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움직이며 내려오고 있었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오각뿔형의 별이 내려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한 점이 레이저 쇼 하듯 움직이므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바라보는 사이 어느 순간엔가 오각뿔의 점이 육각뿔(유태인들의 별?) 모양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별이 하늘을 전부 가릴 만큼 컸으나 점차 반지에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지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별이면서도 우주 전체를 대표할 수 있을 만큼의 기운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기운을 보유한 작은 별의 모습을 한 기운이 점점 이진사의 집을 향하여 내려오고 있었다.
기운이 다가옴에 따라 이진사의 집을 에워싸고 있는 기운들도 서서히 빛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회색을 띠고 가만히 있던 기운들이 흰색으로 바뀌며 점차 힘을 얻은 듯
서서히 집 주변을 돌기 시작하였다.
이 기운들의 색깔이 점차 무지개 빛으로 바뀌며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우주에서 내려오는 빛이 다가옴에 따라 집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기운의 빛들의
동조 현상이 증가하였다.
집을 에워싸고 있는 기운들의 빛이 점차 밝아지며
아주 작은 한 개 한 개의 빛의 점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 아주 작은 점 하나 하나가 수백만 개가 모인 기운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운과 동조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오각과 육각의 뿔 모양으로 움직이며 하향하는 별을 맞이하고 있었다. 경이였다.
|
'1. 선계수련 교과서 > 소설 선(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仙 (016) (0) | 2008.01.19 |
---|---|
소설 仙 (005) (0) | 2008.01.19 |
소설 仙 (014) (0) | 2008.01.17 |
소설 仙 (013) (0) | 2008.01.16 |
소설 仙 (012) (0) | 2008.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