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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17)

by 날숨 한호흡 2008. 1. 20.

 

 

선배 수련생의 경우에도 이렇게 홀렸다가 다시 돌아간 적이 있다고 하였다.

양신이 이동하면 반드시 그 자욱이 남는다고 하였다.

나중에 돌아가게 되면 꼭 그 자욱을 찾아서 이곳이 어디인가 확인해 보리라.

 

하지만 그것은 그때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우선 여기가 어디인가 알아야 하였다.

걷고 또 걸어서 해질녁이 되었는데도 아무런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란 말인가?"

이진사는 주변을 돌아보며 모처럼 수련중에 온 장소이지만

한 번쯤은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라도 나누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내가 이 곳에 온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없이 이곳으로 올 리가 있겠는가?

필경 무엇인가 배워갈 것이 있을 것이다. 한 가지라도 배워서 나가야 한다."

이진사는 새삼 각오를 다지며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수련중의 시간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생각지 않기로 하였다.

아마도 돌아가서 보면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흐르지 않았거나 아니면

아예 자손들이 아무도 없는 먼 미래가 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어슴프레한 저녁 평원을 걸어가면서 이진사는 문득 밤 기운에 휩싸여 어디론가

또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기운에 밀려 이리저리 다니다가는 정말로 어디론가 모르는 곳으로 영원히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럴 수는 없었다.

 

마누라와 며느리, 아들과 손자, 김참봉, 박첨지,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머리속에서 지나갔다.

계속 서쪽을 향하여 걷고 있는데 아주 멀리서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엄청난 진동을 수반하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하늘이 울리는 소리였다. 서편의 하늘이 울리며 엄청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구름과 같은 것이 갈라지며 무엇인가가 보이다가 말다가 하였다.

구름처럼 보였으나 구름은 아니었다. 이곳은 무엇인가 이상한 것들이 있는 곳이었다.

 

자세히 보자 땅도 그냥 땅이 아니었다. 보석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것이었다.

바위도 그냥 바위가 아니었다. 보석 조각들이 모여서 바위의 모습으로 만들어 진 것이었다.

하늘의 진동에 의해 구름과 같은 것들이 갈라지더니 갑자기 또 하나의 태양이 나타났다.

 

"방금 저녁무렵이었는데 무슨 해가 또 하나 나타난단 말인가? 괴이한 일이로다."

이진사는 새로이 나타난 태양을 바라보면서 으시시한 기분을 느꼈다. 무엇인가 이상하였다.

태양은 태양인데 따뜻한 태양이 아니었다. 냉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태양이 뜨면 뜰스록 찬 기운이 몰아치고 있었다.

태양이 점차 하늘로 솟아오르자 견딜 수 없을만큼의 냉기가 주변을 메우고 있었다.

 

이 냉광에 따라 모든 사물들이 변하고 있었다.

냉광이 쏟아지는 동안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오그라들고 있었다.

눈에 보일 듯이 오그라든 사물들이 점차 작아지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빛의 횡포였다. 이진사가 사는 동네에서는 빛은 곧 사람의 원천이요, 생명이었다.

그런데 이 별에서는 전혀 아닌 것이다.

빛이 있으므로 인하여 모든 사물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를 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는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어쩌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빛은 적어도 어둠보다는 나아야 했다.

빛이란 그 나름으로 양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음의 논리를 가진 어둠에 비하여 생명체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그 무엇이 있어야 했다.

빛이 있음은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조건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었다.

 

이진사는 빛이 비치지 않고 있는 곳을 보았다.

모든 것이 빛이 비치고 있는 곳에 비하여 기를 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을 보면 정확히는 집어낼 수 없어도 모든 것이 무엇인가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전혀 반대인 세상에 와 있는 것일까?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이러한 세상이 있음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헛 살아온 것일까?

아니면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다른 것들이 많이 있는 것일까?"

 

이진사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발바닥을 스치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모래 위를 걷고 있음에도 비단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고운 곳이 있다니! 정말 세상은 알 수 없는 곳이로구나."

이진사는 이렇게 추운 곳에서 자신이 추위를 타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상당히 싸늘한 날씨임에도 전혀 자신이 추위를 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문득 자신의 주변에서 기(氣)적인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자신의 몸 주변을 약 한 치 정도의 황금색 빛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그 기운속에 온도 조절기능이 있는 것 같았다.

 

이진사는 앞으로 왼손을 가만히 내밀어 보았다. 황금색 기운이 손을 장갑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가만히 의념으로 장갑처럼 손을 둘러싸고 있는 기운을 벗겨내 보았다.

 

천천히 황금색 기운이 옅어지며 장갑같은 기운이 벗겨져 나가고 있었다.

장갑같은 기운이 벗겨져 나가며 서서히 손에 차가운 기운이 닿고 있었다.

기운이 황금빛에서 점차 하애지며 사라지자 왼손이 더 없이 시려왔다.

 

한 겨울 영하 수십도의 바깥에서 있었던 것처럼 손이 시려온 것이다.

마치 얼음물 속에 몇 시간 동안 담가놓았던 것처럼 손이 뼈속까지 차가워져 온 것이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자 이진사는 다시 기운을 불렀다. 하지만 기운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손은 점점 시려왔지만 손을 둘러싸고 있던 기운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는 상태의 손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점점 시려오던 손이 드디어는 감각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동상이 걸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손의 감각만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치 마취를 시켜놓은 것 같은 상태로 손의 감각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손만 그런 상태였으나 점차 팔까지 감각이 사라져 갔다.

팔의 감각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팔을 둘러싸고 있던 기운이 사라져 감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내려다 보자 역시 팔을 둘러싸고 있던 황금빛 기운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미색으로 변하며 사라진 기운은 안개처럼 돌다가 점점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다시 잡을 수도 없는 기운이었다. 사라지고 나면 보충이 불가능한 기운이었다.

 

다른 기운은 의식으로 잡을 수 있었다.

의식으로 부르면 모이고 의식으로 보내면 가기도 하는 그러한 기운이었다.

하지만 지금 있는 곳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음대로 기운이 운용되지 않고 한 번 떠나면 기운이 자연스레 흘러가 버리는 것이었다.

 

기운이 흘러가 버린다는 것은 통제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다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기운이 이렇게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된다면 나의 의식세계를 찾는다고 해도 다시 돌아갈 확율은 없어지는 것일까?

 

이진사는 문득 지금 수련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중 강한 의념에 잡혀 있다가 생각이 길을 잃은 것이다.

생각을 잡으면 다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깨까지 시리다가 감각이 사라져갔다.

이러다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다 잃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빨리 생각을 가다듬고 자신을 찾아야 하였다. 하지만 자신을 찾기에는 너무 길이 멀었다.

자신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자신의 위치를 찾아 마음의 눈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기운이 점점 사라져갔다. 이진사는 기의 보충을 위해서 심호흡을 서너번 하였다.

심호흡을 하자 약간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

이진사는 호흡으로 들어가야 현재의 위난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 호흡이야. 왜 호흡을 생각지 못했던가?"

이진사는 단전으로 강력하게 기운을 끌어들이며 호흡을 시작하였다.

의외로 순수한 기운이 끌려들어왔다. 전에 나갔던 기운마저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현재의 상태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원하고 있던 상태임을 알았다.

의식세계가 아닌 무의식의 세계가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의식은 이진사를 호흡으로 이끌었고, 이진사는 다시 호흡으로 의식세계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무의식의 세계가 의식세계로도 통제가 안되던 이곳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의 힘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의식의 힘만 힘이고 무의식의 힘은 힘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이진사의 생각은

지금 전환의 시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의식의 힘이 자신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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