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조 중엽의 어느 날.
충청도의 어느 산간 마을.
이 진사 댁 며느리 김씨는 산월(産月)을 맞이하고 있었다.
김씨는 태몽도 없이 아이를 가졌는데 출산 일이 거의 되었을 때인 엊그제는 꿈을 꾸었다.
마루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쳐다보니 직경 약 3.5미터, 길이 55미터 정도나 되는 집채만한 황룡이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커다란 용은 하늘 높은 곳을 날아다니다가 내려오기도 하고 다시 날아오르기도 하며 노닐다가
날아다니는 것을 멈추고 김씨를 발견하고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김씨는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저 용에게 잡아먹히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도망을 하려해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씨가 도망치려 하는 것을 본 용은 따라오기 시작하였다.
하늘에서 따라오는 용과 땅에서 도망하는 여인의 거리가 점차 좁혀졌다.
드디어 용은 김씨의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땅에서 1미터 정도 위에 떠 있었다.
정면에서 보니 정말로 엄청나게 큰 용이었다.
이렇게 큰 용이 있다는 것을 김씨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눈부신 빛을 내뿜고 있던 용이 빛을 거두었다. 용의 실체가 드러나 보였다.
강철로 만들어 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디 한군데 나무랄 곳이 없이 단정한 모습으로 떠 있었다.
아직도 군데군데에서 열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토록 큰 용이 어떻게 날개도 없이 떠서 날아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집채만하며 눈만 해도 화로만 한 것이 앞에 떠 있으니 도망을 간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 같았다.
허나 가만히 용의 눈을 보니 점차 무서움이 가셨다.
눈빛이 온화하였다.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
손짓으로 '집으로 보내 달라'는 뜻을 전하자 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가도 좋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김씨는
돌아서서 부지런히 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용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김씨라면 모친으로 섬겨도 될 것 같다는 자신의 판단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김씨는 기를 쓰고 뛰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해서 돌아보면 용이 자신에게서 여남은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그대로 있고,
뛰다가 다시 보면 용이 다시 그 자리에 있고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뛰어도 내내 그 자리였다.
김씨는 도망을 멈추었다. 더 이상 도망을 해보아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마침내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그런데 얼마를 그렇게 앉아있어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아무 곳에도 용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위를 보자 뒤쪽에 직경 2센티 정도로 아주 작게 변해버린 용이 가만히 공중에 떠 있었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것은 여전하였고 오히려 빛이 더 밝아진 것 같았다.
공중에 가만히 떠서는 눈을 껌뻑이며 김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씨는 이 용이 아까 보던 그 커다란 용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모습으로 보면 틀림없이 그 용인 것 같았다.
커다란 용의 왼쪽 볼에 진홍색 점이 있었는데 그 점이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이 용을 데리고 집으로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도 모를뿐더러 시부모님으로부터 허락이 내릴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김씨는 용에게 양해를 구하였다.
" 너를 데리고 갈 수가 없을 것 같구나."
" ...... "
용은 말없이 김씨를 바라보다가 어디론가 가려는 것 같았다.
김씨가 다시 돌아서서 한참을 가고 있던 중 옆에서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저는 메릴렌스에서 온 미르입니다."
"미르? 미르가 누구인데?"
"당신의 아들이 될 사람입니다."
"아들이라고?"
"더 이상 자세한 말씀은 드릴 수 없사옵니다.
오늘 저와 있었던 일은 전혀 누구에게 말씀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기운이 나갈 수 있사옵니다.
저는 당신을 모친으로 모시고 공부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공부? 무슨 공부?"
"세상공부입니다."
김씨의 마음에 집히는 바가 있었다. 예전에 부친께서 천지의 이치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천지의 기운이 가장 승하였을 때 그 형상이 용으로 보인다.
용이 보인다 함은 너의 기운도 용을 바라 볼 만큼 성숙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김씨는 지금이 바로 그 때인 것 같았다.
자신이 수 십 년간 호흡을 해 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 저 용이 기운이라니!?
김씨는 눈을 감고 영안(靈眼: 육안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용을 바라보았다.
용은 어디론가 가고, 기운만 보이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자 뽀얀 기운 속으로 별이 보였다.
우주였다. 우주가 맞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별들이 여러 개 보이고 있었다.
"그래. 저 용은 우주에서 온 것이야."
김씨는 안심하고 기운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허공의 한가운데서 갑자기 흰색 기운이 몰려왔다. 엄청나게 강한 기운이었다.
김씨는 기운의 바람에 말려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끝없이 솟아오르며 기운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팔만 펄럭인다면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기운을 다 받아들이고 나자 이번에는 땅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내려오자 땅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악!"
꿈이었다. 햇볕이 마루로 쏟아지고 있었다. 아찔한 꿈이었지만 불쾌하게 떨어져 내린 것은 아니었다.
아주 상큼하게 떨어졌던 것이다. 놀라움도 비교적 적었다.
평소에 그 정도의 꿈을 꾸었다면 아마도 몹시 가슴이 두근거렸을 것이다.
높은 곳으로부터 엄청난 속도로 한없이 떨어져 내렸지만 느낌으로는 아주 낮은 곳으로부터
잠깐 사이에 떨어져 내린 것 같았다.
마음이 평온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주변에서 기운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
"꿈을 꾸었을 뿐인데 기운이 바뀌었구나! ..."
지금까지 자신의 주변을 싸고 있던 기운이 아니었다. 훨씬 더 포근하고 감싸주는 듯한 기운이었다.
바람이 불어도 자신에게는 닿지 않을 듯,
날씨가 추워도 자신은 괜찮을 것 같이 기운이 자신을 싸고 있었다.
이러한 기운은 꿈에서 본 용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었다.
그 기운과 유관한 것이라면 이 기운은 내 것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이 기운을 어디에 사용할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을 보호해 주는 기운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주 본체의 기운이 이러한 것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맞다. 우주 본체의 기운이라면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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