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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06)

by 날숨 한호흡 2008. 1. 8.

 

 

바다였다. 한없이 넓은 바다에 둥둥 떠 있었다. 하늘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무엇인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은 것이 차차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이상한 것이 자연스러운 곳.

이곳은 아직까지 와보지 못한 전혀 다른 세계였다.

우주에 이러한 세계가 있었던가! 아주 편하였다. 이보다 더 편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중력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중력이 있어 상하간이 방향은 지정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어떠한 자세로 있어도 편하였다.

본격적으로 수련에 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전부 잊은 것 같다가도 다시 생각나는 것들이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나는 것들은 전에 자신이 해왔던 일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아무 것도 알아서 해야 할 것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가져왔던 기억들이 차차 사라져 가고 있음에 대한 인식이었다.

생각을 하려 해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전에는 너무나 당연히 생각났던 기억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바로 전의 일을 생각하려 해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주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간의 기억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이 피부를 통해 느껴져 왔다.

다만 되돌려 생각하는 기능이 잠시 정지된 것 같았다.

 

지금은 그냥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

가만히 있으니 마음이 점차 평온해져 왔다. 하지만 때로는 다소 불편해지는 때도 있었다.

이러한 경우는 자신보다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주의의 환경이 간접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지만 이 영향이 자신을 바꾸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제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일까? ...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보려 하였지만 아무 것도 움직여지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 자신에게 타일러 보았다.

나락이었다. 끝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며칠을 그렇게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약간의 불안감이 들기도 하였으나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 떨어졌는데도 더 떨어질 것이 있다니... 참으로 우주는 경이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한 시간을 그렇게 떨어지다가 이번에는 옆으로 밀리기 시작하였다.

똑바로 선 상태에서 아래로 떨어지다가 그대로 선 상태에서 옆으로 밀리는 것이었다.

도대체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발바닥에 닿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허공에 뜬 채 그냥 밀리고 있었다.

얼마간을 그렇게 밀려나가다 보니 바닥에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았다.

약 한 자 정도 아래에 거므스레한 것이 보이고 이것이 아주 서서히 올라오는 것이었다.

발바닥에 닿을 정도까지 올라오자 속도가 줄어들었다.

속도가 점점 줄어들며 발끝이 바닥에 닿을락 말락 스쳐 지나갔다.

드디어 지상에서 2-3센티 정도 위에 멈추어 서서 바닥을 내려다보자 바닥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한 동자승이 득도 후 승천하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을 전에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극락전 벽에 그려져 있던 바로 그 벽화였다.

"이 벽화가 바닥에 있다니..."

다시 보아도 틀림없이 그 벽화였다. 상당성(上堂星) 극락전의 그 벽화가 분명하였다.

발끝이 벽화에 닿을까 싶어 얼른 발끝을 들어올렸다.

이 벽화는 선계에서도 별로 구경할 수 없을 정도의 귀한 것이었다.

선계 8등급 이상이 되어야 볼 수 있다던 그 벽화를 본 것이다.

벽화의 선명한 색깔이 무지개 빛으로 바뀌며 폭발하듯 솟아올라왔다.

마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것 같은 기세였다.

미르는 깜짝 놀라 옆으로 피하려 하였으나 이미 늦은 관계로 그 빛의 소나기를

그대로 덮어 쓸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빛 소나기가 가라앉은 후 언제 그랬더냐 싶게 다시 어둠이 깔려 있었다.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자 자신의 옷이 달라져 있었다.

원래 자신이 입고 있던 무색의 옷이 황색으로 바뀌고, 잔잔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자. 이제 가 보아라. 수련의 길은 끝이 없는 것이니 중도에 멈춤이 없이 갈 수 있도록 해라."

나웅 선인의 천음이었다.

수 백 광년도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나웅 선인은 라르 선인의 대부격인 분이시다.

미르는 아직 나웅 선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하지만 멀리서 나웅 선인을 뵌 적은 있었다.

그 분의 목소리는 언제나 3 단전(상, 중, 하 단전)으로 함께 들렸다.

온 몸을 울리듯 아주 기분좋은 목소리였다.

선인들은 물론 자신이 대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들리도록 할 수도 있었다.

이제 수련에 들 무렵 나웅 선인의 천음을 들은 것이다.

나웅 선인의 천음은 수련에 들고자 하는 선인들에게 들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웅 선인의 천음을 들었으니 이제는 수련에 들어야 할 것 같았다.

"하늘에 모든 것을 맡기고 나의 모든 것을 진화시켜 달라고 하라. 무심치 않을 것이다."

진화가 가능함을 암시해주는 말씀이었다.

 

나 이외의 모든 수련생들이 이러한 목소리를 들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그럴 것 같았다.

선계에 있었으면 생각만 하면 알아졌으므로 이러한 것을 알기 위하여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상에 내려오니까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었다.

작은 것 하나까지도 전부 생각에서 행동으로 알아내어야 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왜 이렇게 답답하게 일이 풀리는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통하여 한 가지, 한 가지 수련을 해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에는 기쁨이 자라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답답함이 지식을 알도록 만들어주는 이것이 바로 수련의 묘미인지도 몰랐다.

선인의 몸으로 있으면서도 지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지 몰랐다.

미르는 어차피 수련에 들어야 할 바에는 빨리 들고 싶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기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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