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11일, 어머니의 49재여서 묘소에 다녀왔습니다.
그날 새벽 선계 하단 무변대에 계신 어머니를 먼저 찾아뵈었지요.
어머니는 사방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무변대의 한가운데에
개량 한복 비슷한 흰 옷을 입으시고 편안하게 계시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만나자마자 너무 반가워서 활짝 웃었는데 어머니는 그저 빙그레 웃어 보이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신 때부터 어머니께서는 가족들을 반기지 않으셨지요.
그 모습이 가족들의 마음을 영영 아프게 합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또 사랑한단 말을 못 했습니다.....
어머니의 유품 중에서 저는 지팡이를 골라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수선대에서 사용하시던 추억이 서린 물건이기도 하려니와
앞으로 어머니의 생애에 지팡이가 되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비록 살아생전에는 어머니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해 썩은 지팡이 노릇도 못 했지만
앞으로는 자신이 좀 섭니다.
단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선계로 향하시는 어머니의 지팡이가 되어 드렸다는 것인데
그런 정도의 노력은 제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에 비한다면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한 때 모녀였던 인연에 감사드리며, 고난 많았던 어머니의 영생(永生)을 책임지고자 합니다.
어머니를 추모하며 금년 제 생일에 주셨던 카드의 문구를 유언으로 가슴에 새깁니다.
"축 생일 화영! 새 천년의 처음 맞는 사랑하는 딸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전쟁의 불안과 고통 속에서 축복 받지 못하고 태어난 딸....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내 마음속에 멍든 상처가 그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부디 정성을 다해서 존경받는 희망의 등불이 되어 주기를 빌며...... 노모가."
다시 뵈올 때까지 부디 편안히 계십시오.
(이어집니다.)
[2장.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어머니의 향천을 지켜보며,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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