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막판에 모든 것을 다 버리셨다고 했는데
'무엇을 어떻게 버리셨는가?' 하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살아생전의 습을 버리셨습니다.
어머니가 올라가실 때 300미터까지는 무슨 가방을 들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왜 가방을 들고 계신가?' 하고 들여다보니까 별게 아니더군요.
옷가지나 소지품 등이었습니다.
올라가면서 탁 버리시기에 받아서 열어보니까 거울, 수첩, 속옷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성격이 워낙 깔끔하셔서 여행이라도 가시면 꼭 소지품을 들고 가셔야 했습니다.
자신의 것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지요.
보통의 사람들은 하룻밤 자러 가면 물건 없이도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룻밤을 주무셔도 꼭 소지품을 챙겨가는 분이셨습니다.
죽어서도 그런 게 필요할 줄 알고 가지고 가셨던 것이지요.
그렇게 깔끔한 성격이셨는데 막판에 탁 버리고 가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종교를 버리셨습니다.
어머니가 믿으신 종교의 장지가 파주에 있습니다. 그 종교에서는 국립묘지와 마찬가지인 곳입니다.
그곳에 묻히도록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걸 거절하시고
"그냥 가족들이 만들어 놓은 묘지에 묻히겠다" 는 뜻을 밝히시더군요.
그토록 오매불망하던 종교도 버리신 것이지요.
세 번째로 언니들이 없는데 가실 뜻을 표한 것은 가족도 버리신 것입니다.
또한 여러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고 부조금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연장하려면 혈액 투석을 해야 했는데,
"나는 다 버렸다. 하지만 너희들이 너무 한이 맺힌다면 한두 번 정도는 해도 좋다" 고 말씀하시더군요.
생명에 대한 애착도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무거우셨는데 제 어머니답게 한순간에 탁 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 어머님 정말 최고다, 멋지다' 했습니다.
버리지 못하실까봐 제가 그렇게 노심초사하면서 공부를 시켜드렸는데 일순간에 다 놓으시더군요.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한순간에 버리지 못하면 버리지 못하시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하나하나 버리기에는 너무나 버릴게 많아서 한순간에 버리지 않으면 안 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한순간에 탁 버리셔서 100점짜리 임종을 맞으셨습니다.
공부의 끝에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대단한 일입니다.
수련을 하지도 않은 분이셨지요. 막판에 제가 공부시켜 드린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자꾸 욕심을 갖게 하기도 하고, 버리는 일에 오히려 역행하게 하기도 하는데,
일순간에 다 버리셨습니다.
어머니의 경우, 죽음에 대한 공부가 약 10% 의 공부였는데 완벽하게 해내셨습니다.
자식들의 경우도 제가 있었기 때문에 정리가 빨리빨리 되었고요. 두 언니는 거의 정리가 되었는데,
어머니를 모시던 한 언니만 미처 공부를 하시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정리할 것이 남았더군요.
그 언니는 공부를 좀 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정리하도록 했습니다.
(이어집니다.)
[2장.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어머니의 향천을 지켜보며,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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