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와 광해군 때의 명신 이항복(李恒福)의 호는 백사(白沙)로 명장 권율(權慄)의 사위였다.
어렸을 때 항복은 권율 대감의 옆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항복의 집에는 큰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감나무에서는 해마다 감이 주렁주렁 열리곤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감나무는 권 대감 집 담장 가까이 서 있었던 것이어서
가지의 대부분이 옆집 너머까지 뻗쳐 있었고,
이를 빙자하여(또 대감집이라는 세도를 빙자하여) 옆집 하인들은 항복네 감을 다 따가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를 안 어린 항복은 어떻게 대감네를 혼내줄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어느날 대감이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불쑥 대감댁을 방문하였다.
항복은 대뜸 대감이 머물고 있는 방안으로 팔을 쑥 밀어넣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봉창을 뚫고 들어온 어린 아이의 팔을 보고 대감이 놀라지야 않았겠지만,
요것 봐라 싶기는 했을 것이다.
항복이 방 밖에서 여쭈었다.
"대감, 이 팔은 누구의 것이오니까?"
권 대감이 대답하였다.
"이놈아, 그건 네놈의 팔이 아니냐?"
그러자 이 맹랑한 꼬마가 냉큼 받았다.
"그러하다면 담장을 넘어온 감은 또한 누구의 것이오니까?"
대감이 껄껄 웃고 하인들을 불러서 감을 다 돌려주도록 하였음은 물론이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권율은 항복의 영특함을 알게 되어 마침내 딸을 항복에게 시집보냈던 것이다.
[숭어 85쪽]
'2. 생활의 발견 > 역사와 인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국]디즈레일리와 그의 하녀 (0) | 2007.08.19 |
---|---|
[중국]천리를 비추는 보배 (0) | 2007.08.11 |
이성계와 무학대사 (0) | 2007.07.29 |
[중국]진시황의 의심 (0) | 2007.07.22 |
[중국]천하를 얻은 이유 (0) | 2007.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