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미사 참례.. 공감가는 글 하나
고교 1년 때부터 결혼 후 몇 년간까지, 열심히 하던 나의 가톨릭 신앙 생활..
지금의 아내와 결혼 조건으로 가톨릭 입교를 요구할 정도였는데..
약 10년 전부터, 나는 미사 참례를 거의 안 하고, 오히려 아내가 더 열심이다.
본인은 신앙심 때문이 아니라 성당 미사 반주로 하는, 자신의 오르간 연주가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가끔 명절 때 차례를 지내는 대신 미사를 드리러 가면서,
언젠가 아내와 함께 그 성당의 청소년 미사를 갔는데..
주일학교 교사인지 청년 여성 자매의 성가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아내를 졸라서 그 미사만 가끔씩이지만 참례하고 있다.
한 시간 남짓 미사 내내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 실려 전달되는 미사곡 음률과 가사 내용은
나에게 또 다른 힐링이 되고 있다.
오늘 미사 참례시 받은 '주보'를 보는데.. 재미난 제목에 눈이 가서, 찬찬히 읽어 보았다.
그 내용이 담담하면서도 꽤 공감이 되어 아래에 필사를 해본다..
"그를 통해 내게 말씀하신 것"
큰 애가 막 기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주일날 저녁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오늘 아이가 저지른 만행'들을 소상히 일러바치던 나는,
갑자기 고해성사를 하듯 털어놓기 시작했다.
'쟤 뒤꽁무니 쫓아다니느라... 주일인데 미사도 안 가고 기도도 안하고...'
심각한 나와 달리 남편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얘기했다.
'우린 애 잘 키우는 게 제일 좋은 기도야.'
이후로도 그 말은 내게 때때로 면죄부를 주기도, 위로가 되기도 했는데 곱씹을수록 두려운 말인건 분명했다.
사실 나에게는 '하느님이 내리실 벌'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있었다.
내 멋대로 신앙생활의 의무 같은 걸 정해놓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는 식인데,
그럼 하느님의 분노가 무서워라서라도 매일 의무를 지켰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신앙생활을 게을리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그 다음날 여전히 게을렀고 몇 번 반복된 후에
어느 날 밀린 숙제를 하듯 기도를 몰아서(?) 하는 것이다.
반면에 남편은 하느님과 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따로 시간 내 기도하진 못해도 생활이 바로 기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언제나 하느님의 품 안에 머물러있음을 알았고 그분은 좋은 것만 주신다고 믿는다.
처음부터 나는 남편의 그런 '물렁한' 신앙생활이 좋았다.
신앙에 대한 그 부드럽고 무른 감각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꽉 붙잡아주곤 했다.
난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신앙생활에 의욕을 잃어갈 때 옆에서
'넌 이미 잘하고 있는데?' 한 마디 하면 다시 의욕이 생겼다.
그리고 보면 나는 신앙에 있어서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이라
누군가 옆에서 칭찬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미사를 드리러 갔을 때, 고해성사를 못 했으니 성체를 모실 수 없다는 나에게
남편은 먼저 성체 모신다음 고해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묵주기도 하다가 잠들어 버렸다고 자책하고 있으면 졸릴 땐 그냥 화살기도만 하자고 했다.
복음에 대해 얘기할 때 주로 듣는 쪽이던 남편이 어쩌다 한 번씩 자신의 생각을 내놓으면 헉 하고 놀라곤 한다.
내가 나름의 공부와 묵상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남편은 처음부터 자연스레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제 몸에 생긴 상처를 무의식중에 자꾸 만지려 한다.
아프다면서도 상처에 앉은 딱지를 살살 건드리면서 논다.
내가 딱 그랬다.
신앙에 대해 스스로 상처를 만들어 놓고, 아물만 하면 딱지를 잡아 뜯었다.
그런 나를 안타깝게 여긴 하느님이 남편을 만나게 해주신 걸까.
하느님은 빚을 갚으라고 종용하는 채권자가 아니라,
갚을 길 없는 은총을 한없이 내려주는 분이라는 걸 알게 하시려는 걸까.
들을 귀 있어도 도통 당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한 인간을 위해서
하느님은 그 배우자의 목소리를 통해 얘기하신다.
그래서 나는 가끔, 벌주시는 하느님 안에 스스로를 가두려 할 때마다 남편에게 말을 건다.
.....
오랫동안 어느 순간부터 홀로 미사를 다녀오던 아내..
이젠 가끔씩이라도 함께 할 작정이다.
2017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