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계 수련의 종착역
책에 보면 일상생활을 양보하고 수련도 양보하라고 하셨거든요.
일상생활을 양보하라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수련에 있어서의 양보는 어떤 것인지요?
제 스승께서는 늘 그때 그 시점에 맞게 비유와 상징을 이용해서 말씀하시는데,
아마 그때 제가 수련에 매달리거나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수련하시는 분들은 수련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련이 즐거워서 하고, 밥 먹는 것처럼 일상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심정이 되어서 결사적으로,
아주 필사적으로 하게 됩니다.
때로는 사회생활에서 소외된 감정에서 비롯된 것도 있는데,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인 분들이 보상받아야 될 것들을 전부 이 수련에서 받고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매달리게 됩니다.
몰론 사회생활이 너무 어렵다 보면 매달리게 되기도 합니다.
수련으로 보상받으려 하고 수련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 처방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병에 걸려도 수련으로 해결하려 하는데 초기에는 해결될 수도 있지만
이미 병이 50% 이상 진전된 상태에서는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때는 전문가를 찾아서 치료해야 합니다.
병을 수련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병 고치다가 세월이 다 갑니다.
또, 대개 처음에는 수련하고 싶어서, 깨닫고 싶어서 수련을 하다가 어느 순간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다른 목적을 위해서 수련을 이용해 보려고 합니다.
주객이 전도되어 수련이 수단시 될 때는 정도正道를 간다고 볼 수 없습니다.
수련을 하다가 어떤 방면에 도가 트이고, 본인이 원하면 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통이 열려서 '나는 환자 치료를 하겠다, 그것이 소원이다' 그러면 그렇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다 끝까지 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끝까지는 못 갑니다.
기운은 한번 어느 쪽으로 트이면 계속 그쪽으로 쓰이기 때문에
일단 그쪽으로 길을 열어 놓으면 의술은 될 수 있어도 도까지는 안 됩니다.
일단 본성을 보고 나서 다시 하면 그때는 의도醫道가 되지만 그전에 차리고 나와 앉으면 의술입니다.
누구나 다 종착역이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하시겠다면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라는 것은 그런 시시한 욕심 가지고는 갈 수가 없습니다.
중간에 얻어지는 작은 것들은 계속 버리고 가고, 버리고 가야 합니다.
책에 보면 제가 수련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자꾸 버리면서 가니까 그것이 참 귀하게 여겨졌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바로 그런 점입니다.
다른 수련도 그렇지만 특히 선계수련은 깨달음이 목적입니다.
깨닫기 위해서만 이 수련을 해야 합니다.
어떤 능력을 얻기 위해서 혹은 생활의 방편으로 수련이 수단시 되어서는 도저히 깨달음으로 갈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은 내 뜻대로, 수선재, 2008년 8월 25일, 앉아서 우주까지,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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