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드디어 마을 건설 현장으로..
2014년 1월 현재..
나의 집은 전남의 한 작은 도시에 있으며, 직장은 다른 지방의 도시에 있다.
그리고 나의 집은 시골이 아닌 도시 중심의 아파트이며
나의 현재 직업은 발전소 엔지니어다..
개인적으로 시작한 꿈인,
뜻과 마음이 맞는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마을 실현이라는 소박한 꿈을 품은 2002년 부터,
명상학교 수선재 회원분들과 함께 보다 폭넓고 깊은 의미와 목적을 둔 생태공동체 실현에 참여했던
2012년 까지..
나의 꿈 생태공동체 기획과 실현 시도의 전 과정을 햇수로 따져보니 딱 10년이다..
2002년에 첫 뜻을 품고 2012년 12월에 그 꿈을 일단.. 접었으니..
그동안 여러 번 생각한 끝에..
비록 그 꿈을 현재는 접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생태공동체, 생태마을, 전원마을, 귀촌 등에 뜻을 두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고,
또 나 자신 지금까지 살아 온 나의 삶을 되돌아 봄으로써,
앞으로 내가 선택하거나 나에게 주어질 삶에 보다 열린 마음과 능동적인 자세로 임할 수 있다고 보기에
중단하고자 했던 생태공동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나의 주관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 중심으로 쓰는 이 글에 대한 불필요한 악플들로 인해,
명상학교 수선재나 그 회원 분들이 피해를 본다면.. 이 글을 즉시 중단할 것이다..
- - - -
2010년 11월..
나의 꿈.. 생태공동체 건설의 현장에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발령이 난다..
그동안 사단법인 선문화진흥원 교육팀장의 역할과 사무처장의 역할을 겸하면서..
2011년 선문화진흥원의 비전을 그려나가며,
당시 나와 함께 그 비전의 실천을 위해 함께 하고자 자청했던 고맙고 멋진 분들..
제주도의 한 카페에서 그 미래를 함께 논의하고 그림을 그리던 그 고맙고 멋진 분들과
그 판을 다 짜 놓았는데..
바로 그 날.. 상위 의사결정자로부터 전남 나주로 갈 것을 요청 받았다.
나의 강한 반대와 그분의 끈질긴 설득..
결국은 2010년 늦가을.. 아무 연고도 없는 전남 나주로 향했고..
이로인해 지금까지 나와 나의 식구들이 나주에서 살게 된 것이다.
세상의 법칙이 수시로 어긋나는 곳.. 명상학교 수선재의 의사결정 시스템..
그러나 큰 틀에서 나의 꿈과 비전이 일치하는 일이기에
일단 결정했고 나의 특성 '끝장보기..'로 나는 무섭게 실행에 옯겼다.
나주에서의 나의 꿈 생태공동체 이루기를..
나주로의 발령이 결정되자 나는 바로 일주일만에 그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는 이미 나보다 먼저 마을 현장에 와계신 분들이 계셨고,
그 분들을 중심으로 마을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그 추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고..
정확히 '나주/영암 선애마을 추진위원장' 이 나의 정식 타이틀이었다.
당시는 생태공동체를 나주와 영암에 각 한 곳씩, 모두 두 곳을 건설할 계획이었고,
우선 나주에서 이미 정착하신 전임 추진위원장내외분의 숙소와 사업장에,
추진위원회 및 회원분들의 사무실과 숙소를 마련하였다.
그곳에서 마을자립에 필요한 영농기술 습득 및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사전 교육들이 진행되었고..
나의 전임 위원장님은 여성분으로 나주가 고향이시고
남편분과 함께 이미 오래전에 그곳에서 농사를 짓던 분이셨다.
이미 그 곳 출신으로 주변 마을 분들과 친분이 돈독했고 남편 분 역시 공학도이셨지만
일찌감치 부인과 함께 농사를 지으시면서 귀농의 성공모델로 정착하신 분이셨다.
아무 연고도 없는 전남 나주에서 내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두 분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당시 명상학교 수선재에서 추진하던 다른 마을들에 비해 이 곳은 이분들이 그곳 토박이에다가
마을 이장님과 마을 어르신들에게 인정을 받은 상태에서 추진되던 마을이었기에,
마을 분들도 우호적이셨고 관할 관청과의 업무 협의도 매우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참으로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이다.
나는 추진위원장으로서 당시 나주 마을(나주영암 선애마을)에 와계신 회원분들의 역할 분담과 조율 등이
주업무였고 대외 업무는 이 두 분에게 일임했기에,
마을 추진을 위한 각 진도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비교적 잘 갖추어지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생각해왔던 마을 시스템을 실현하는데 불필요한 고민을 많이 줄일 수 있었고..
그런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은 당연히 없는 법..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비교적 안정되고 편한 여건이라 생각되었던 이 곳에서,
드디어 추진위원장으로서 공부해내야 할 꺼리들이 심상치 않게 다가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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