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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활의 발견/생태공동체이야기

생태공동체 실현(5).. 올인(All in)(2)

by 날숨 한호흡 2013. 4. 28.

 

 

 

 

 

올인.. All in..

 

과거 꽤 유명했던 드라마 제목.. 도박의 용어..

 

 

나에게 있어서 생태공동체 조성 참여는

개인적으로 그야말로 드라마였으며..

내 인생의 승부수, 바로 도박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럼 그 결과는, 현재(2013년) 시점의 나의 입장에서의 성과는??

 

물질적으로는 똔똔.. 건강상으로는 약간 향상.. 정신적으로는 시야와 사고의 확대..

영성면에서는 ??..

전체적으로는 " 절반의 성공.."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 글을 전개하면서 설명드릴 예정이다.

 

 

다시, 올인을 결정하던 2010년으로 돌아가 본다..

 

 

 

 

 

 

2010년 3월 퍼머컬쳐 교육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사)선문화진흥원의 스탭으로

재능 기부의 형태로 생태공동체 조성 기반 마련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던 차..

 

 

명상학교 수선재에서 본격적으로 2010년 9월 부터 전국적으로 생태공동체 조성을 착수하니

입주희망자와 조성 참여 희망자들 모집한다는 공지가 떳고..

 

 

나는 이 소식에 '당연히 놓칠 수 없는 기회..' 라는 마음과 '만약의 실패에 대비해야 함..'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당시 가지고 있던 재산과 재능 그리고 가족들의 정서 등을

깊이 따져 보아야 했고,

 

 

더불어 가장 고민했던 것은, 전국적인 생태공동체조성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당시 수선재 지도부들의

역량, 의지, 비전, 추진력, 소통능력 그리고 진정성 등에 대한 내 개인적인 철저한 검토와 확인이었다.

왜냐면 모든 행위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해 남 탓을 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명상학교 수선재의 회원으로 7년간 명상을 하였으나 정식 임직원으로 일한 적은 없었고,

직장생활과 수선재의 동호회 성격의 활동만을 하면서 생태공동체를 함께 이룰 수 있는..,

함께 어울려 마을을 이루고 살아갈만한 수선재 회원분들을 한분 한분 찾고 또 알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모든 사람들과 다 마음이 맞을 수는 없을 테니까..

 

 

 

 

 

 

2010년 9월 회사를 정리하고 (사)선문화진흥원의 교육팀장으로 본격 일하기로 결정하면서..

개인적으로 All in 플랜을 수립하였고 그 개요는 다음과 같다..

이 결정은 위에서 얘기한 개인적인 여건과 당시 수선재 지도부들에 대한 나의 냉정한 분석을 토대로

수립되었다. 모든 것은 내 탓이니까..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고..

 

(공동체들 또는 여타 조직이나 단체들이 종종 사용하는 말.. 우리 모두의 책임..

그러나 이말은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음과 다름이 없음을 이미 나는 여러번 경험했었다.

결국에 가서 문제가 생길경우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나 자신이고 이로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나와 나를 믿는 사람들(가족들?)에게 오는 것..)

 

 

그래서..

 

1. 명예퇴직금을 공동체 입주 자금으로, 일반퇴직금으로는 공동체 입주까지의 가족 생활비로 함

2. (사)선진원의 교육프로그램을 생태공동체 입주 및 정착을 위한 영역까지 확대하여 기획

3. 생태공동체 단독으로는 존립이 어려우므로 도시인들과의 교육/영농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

4. 나의 아내와 아이들이 스스로 원할 때까지는 공동체 입주 및 생활은 권하지 않음

5. 수선재 생태공동체 성공 가능성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은 1차로 2012년 12월에 함

 

으로 나 자신의 올인 계획(룰)을 정하고 최근까지 이를 지켜왔다.

 

 

그리고.. 당시 살고 있던 고양시 집은 2011년 1월에 처분하였고. 그 돈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전남 나주로

이사와서 지금까지 생활하는데 필요한 주택마련자금과 생활비로 사용하였다.

생태공동체 조성을 위해 기부한 돈은 거의 없고 나는 오로지 재능기부만 한 셈이된다..

 

 

1항의 명예퇴직은 성사되지 못했다.. 하루라도 빨리 (사)선진원 활동을 시작해야 했기에

당시 생태공동체 조성 책임자급 한 분과 협의하여 공동체 입주금은 나중에 입주 시점에 기부하고

우선 나의 재능기부로 그 기여를 인정받았다..

 

 

지금 돌이켜 볼 때 아쉬웠던 점은..

 

 

명상학교 수선재에서 생태공동체를 전국적으로 조성할 때.. 공동체 마을 본연의 역할과 그 목적에 대해

대외 홍보가 좀 더 충실히 진행되었다면.. 하는 점이다.

 

 

영성적 측면과 지구 위기에 대한 강조가 우선되었던 홍보로 인해 많은 진정성이 왜곡되어 외부로

전달되었고, 이에 수선재 임원들 조차도 일부나마 각자 자신들의 판단으로 행동하고 알렸기에

지금까지도 여전히 부작용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내가 올인한 이유는 그 어떤 다른 이유보다..

현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와 그로 인한 부작용이 매우 우려되었고 더불어 제도권 교육의 왜곡된 전개에

나의 아이들을 포함 우리의 후손들이 더 이상의 불행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였다..

 

 

지구의 환경적 위기.. 인간 감성과 영성의 피폐.. 등에 대한 실천적 해법으로서의 생태공동체 역할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대중들에 대한 접근은 보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가지고

진행되었어야 했다고 본다.

 

 

지역 경제의 급격한 몰락, 지방 상권의 대기업 잠식, 제도권 교육의 여전한 방황, 사교육 기형화,

청소년들의 인성 상실, 노후 생활의 불안.. 등등 이러한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바로

생태공동체 임을.. 공동체 운동임을 적극 알렸다면..

 

 

 

 

 

 

그리고.. 공동체, 귀촌 등을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과정에 있는 분들께..

 

 

무엇을 준비하고 실행하던 '중용'의 법칙을 충실히 적용하실 것을 권한다.

 

즉, 최악의 시나리오와 최상의 시나리오를 분명히 정하고, 그 사이에 위치하는 다양한 수준의

과정과 결과를 반드시 하나 하나 면밀하게 따지고 또 따져야 함을 잊지 마시길..

그럼에도 여기서 가장 비중을 크게 두어야 할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 임을..

 

 

나의 최악의 시나리오..

 

 

공동체 조성을 함께하는 분들과 갈라서고, 빈털터리되어 다시 사회로 복귀조차 못하는 것..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로부터도 철저히 외면 당하는 것..

 

 

다행히 지금은..

 

공동체 조성을 함께하던 분들과 여전히 교류하고,

비록 돈은 턱걸이까지 도달했었지만..사회로 복귀하여 만족스런 일을 하고 있고,

가족과 지인들로부터도 그전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고 있고..

 

내 주변에서 생태공동체를 원하는 분들이 계시면 나의 그동안의 경험을 즐겁게 나누고,

또 장래에 기회가 된다면 함께 새로운 분들과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시작할 여유도 생겼으니..

 

 

 

다음에는 (사)선문화진흥원 교육팀장.. (유)나주/영암 선애빌 추진위원장..

(사)선문화진흥원 원장.. 등

명상학교 수선재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의 여러 사례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