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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활의 발견/생태공동체이야기

생태공동체 실현(4).. 올인(All in)(1)

by 날숨 한호흡 2013. 4. 21.

 

 

 

 

2002년도인가?

 

당시 같은 직장의 친한 동료가 강원도 춘천에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땅을 활용할 아이디어 좀 내보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생각했던 것이 하나는 놀이동산이고

또 하나는 공동체 마을이다.

 

 

이 때는 '생태(Eco)'에 대해 막연히 단어에서 주는 느낌만 있었을 뿐이고..

공동체 마을 역시 친구나 지인 또는 가족과 친척들 중심으로 구성된 멤버들이

은퇴 후 함께 모여사는 곳 정도의 개념만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놀이동산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었고..

그 땅의 지형과 숲 그리고 속해있던 폐교 건물들을 활용한 친환경 놀이시설을 설치하는 수준의..

 

 

그러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다시 직장생활에 전념하다 2003년 명상학교 수선재의 회원이 되고나서

이 곳의 수련프로그램을 좀 더 대중화하여 보급할 장소의 하나로 그 동료의 땅과 폐교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다시 고민을 시작하면서,

2004년 부터 개인적으로 공동체 마을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개념을 마음속으로 구상하고 틈틈히 정리를 해오면서 이를 동료의 땅과 폐교에 구현하는 것을

시도하였으나 여전히 당시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그 일을 추진하는 것은 진도가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임을

점차 깨닫게 되어 정체에 빠지게 되었고, 그러던 중..

 

 

2006년, 당시 진천에 있던 수선재 본부 이전 계획의 한 방안으로 생태명상마을 방식을 제안하게 되고,

이것이 역시 여러 사정들로 인해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결국은 2010년 가을.. 수선재 전체적으로 본격적인 생태마을 조성에 대한 움직임이 발단이 되어

나에게는 인생에 있어 매우 크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결국은 생태마을, 생태공동체 조성을 위한 사업에 내가 모든 것을 걸고 들어가지 않으면,

그때까지 구상만 하고 준비만 하던 나의 꿈들이 결국은 그 상태에서 맴돌뿐

어느 하나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고,

2010년 9월에 잘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생태공동체 조성 프로젝트에 올인하게 된다.

 

 

이는 나 개인의 미래는 물론 아내와 아이들의 미래까지 담보로 한 시도로써,

도시에서 매달 현금서비스 매꾸면서 살다가 보너스 달이 되면 똔똔되던 처지로서는

그야말로 엄청난 리스크를 지고 뛰어드는 도박에 가까운 행위였다.

 

 

아내와 어머니 장인장모님 그리고 당시 직장 상사와 동료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지인들은

이러한 나의 결정에 놀라움과 당혹감 그리고 불안감을 강하게 드러내셨다.

당연한 것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과 안정된 직책 그리고 우호적인 상사와 동료들로 이루어진 여건을 박차고

농사 경험도 없을 뿐더러 모아둔 재산도 없는 상황에서 시골 촌구석에 들어가서 마을을 이루는

일을 처음부터 시작해보겠다니..

그것도 한참 일할 나이인 45세에.. 아이들도 이제 본격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시점에..

 

그만큼 나의 생태공동체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는 것이다.. 

 

 

아내와 약속을 하였다.

 

생태공동체 조성에 참여하여 1년 안에 그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거나 2년 안에 성공모델을 만들지 않으면,

아내의 뜻에 따라 복귀하거나 여튼 그녀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따르리라..

허나 인생에 있어서 오히려 정점에 있을 때, 아직 힘이 있고 열정이 있을 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시도해보지 못하고 그 시기를 놓친다면 이후 죽을 때까지 후회를 하고 살 것이며,

이는 올바른 삶이 아님을 설득하였다..

 

 

어머니와 누이동생들 그리고 장인장모님들은 마음 속은 말이 아니셨겠지만.. 나를 믿고 한번 해보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이후 아내는 수시로 불안해 하고 힘들어 했지만 나름 나를 믿어 주고 격려해주려고 최선을 다했고,

여기에는 어머니와 누이동생들 그리고 장인장모님들의 절대적인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몽상가 아빠/남편의 무모한?? 시도에 덩달아

엄청난 인생 공부를 하게 되었던 가족..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아빠와 엄마의 안정된

사랑을 받아야할 시기에 그렇지 못했다..

빨라야 일주일에 한 번, 보통은 보름에 한 번

만나는 아빠/남편..

 

도대체 하는 일은 불투명해 보이고..

그런데 바쁘기는 무척 바쁜 아빠/남편에

마음 고생 꽤나 한 식구들..

 

 

 

 

2010년 9월 직장을 정리하고..

 

(사)선문화진흥원의 교육팀장을 맡으면서 우선 생태공동체에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어린이/청소년, 성인)

기획을 가장 먼저 시작하였다.

 

 

생태공동체의 성격이 '명상'을 통한 '영성'으로 하늘을 알고 사랑하고..

'친환경'을 통한 '생태'로 자연을 알고 사랑하고..

이러한 하늘과 자연을 알고 사랑하는 주체인 '인간'을 역시 알고 사랑하는 것을 이념으로 하는 것이므로..

 

 

본격적인 생태공동체 조성을 위한 물리적인 준비(토목, 건축)의 시작과 함께 이러한 심성관련 준비가

바로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