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은 말 그대로 하늘의 기운이 내려온 곳이었으며, 하늘의 기운을 받아 선경을 재현한 곳이었습니다."
이생과의 관계를 문의합니다.
그와 금강산을 유람하였었는지요?
이생과 금강산을 유람한 것은 맞습니다.
허나 금강산을 단순히 지나간 것에 그친 것이 아니고 금강산 전체를 두루 살펴보았으니 금강산의 모든 곳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금강산은 말 그대로 하늘의 기운이 내려온 곳이었으며, 하늘의 기운을 받아 선경을 재현한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선경을 구경하고 싶기는 하였으나 여자가 혼자서는 갈 수 없어 재력과 권세가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었지요.
허나 단순히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호간에 대화가 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그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도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름대로 식견이 있었고 속의 일에 대하여는 그런대로 트인 사람이라 함께 여행을 함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허나 하늘의 기운을 아는 것은 혼자인지라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었습니다.
어떻게 하늘의 기운을 알 수 있었는지요?
하늘의 기운을 인간이 그냥 알 수는 없는 것이었고, 이웃 총각 사건 이후 하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나름대로 여러 책을 찾아보자 그동안 보았던 여러 가지 책 속에서 하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책인지요?
일단 하늘을 의식하자 보통의 책 속에도 하늘의 뜻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생은 인물이 마음에 들었는지요?
아니면 다른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요?
모든 면에서 그런대로 준수하였습니다.
그만하면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이었지요.
제가 좋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겠는지요?
여행은 아무하고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잠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하룻밤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며, 일주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한 달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며,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생은 1년은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요.
허나 가끔은 마음에 들지 않는 면도 있어 그와 다투기도 하고 그를 하인으로 칭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마음이 넓어 여유가 있었습니다.
둘이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 있으면서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지요?
두 사람의 끼니를 위하여 몸을 팔기도 하였는지요?
그것이 무엇이 중요한지요?
기생으로 나서는 순간 이미 몸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뜻을 펴기 위해서라면 몸 정도는 어떻게 되어도 좋았습니다.
그가 여행에서 해 준 것은 무엇인지요?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불가능했습니다.
사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짐승이나 자연의 두려움을 피하면서 하늘이 만든 곳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장도長途에서 그의 도움은 상당히 컸습니다.
당시 함께 갈 만한 사람이 그 외에는 없기도 하였던 것이지요.
* 이생과 황진이의 일화는 <어우야담>에 자세히 전한다. 이생은 재상의 아들이라고만 나와 있으며 본명은 전하지 않는다.
- 황진이는 금강산이 천하제일 명산이라는 말을 듣고 꼭 한번 가려고 했으나 동행할 사람이 없었다. 마침 서울에서 이생이라는 청년이 놀러왔는데, 재상의 아들이며 사람이 호탕하고 소탈해서 함께 유람을 할 만하였다.
황진이가 조용히 이생에게 말했다.
"제가 들으니, 중국 사람도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라는데, 하물며 우리나라 사람으로 이 나라에 태어나서, 그것도 신선이 산다는 금강산을 지척에 두고 있으면서 구경을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이 몸이 우연히 선랑을 모시게 되었으니 같이 신선처럼 놀기에 마침 잘 되었습니다. 산의야복(山衣野服)으로 그 그윽하고 뛰어난 경치를 구경하고 돌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습니까?"
이생이 허락하자, 일체의 시동이나 종도 따르지 못하게 하였으며, 무명옷에 초립을 쓰고 양식 주머니까지도 몸소 짊어지게 하였다. 황진이도 스스로 여승처럼 고깔을 만들어 쓰고, 몸에는 갈포로 지은 장삼과 무명 치마에 짚신을 신고 죽장까지 들었다.
두 사람이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깊숙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절을 두루 찾아 밥을 빌어먹었고, 어떤 때는 황진이가 몸을 팔아 중한테 양식을 얻기도 했지만, 같이 간 이생은 나무라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수풀 속을 헤매는 동안에 굶주리고 피곤해서 그전과는 모양이 딴판이 되었다.
그러다가 한 곳에 가니 선비 여남은 명이 냇물 위 송림 속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는데, 황진이가 지나가며 인사를 하니 "술 할 줄 아시오?" 하며 한 좌석을 내주었다. 사양하지 않고 받아 마시며 노래를 부르니 노랫소리가 유난히 맑아 수풀과 바위 속까지 울렸다. 선비들이 놀라
"안주도 뭐든지 마음대로 들구려" 하니
황진이는
"저에게도 하인이 하나 있는데 불러서 여기 술 남는 것 좀 먹이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이생을 불러 술과 고기를 먹였다.
이렇게 거의 1년 동안 유람을 하고 거지꼴이 되어 돌아오니, 사람들이 보고 크게 놀랐다.
* <성옹지소록>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 일찍이 산수를 유람하면서 풍악(楓岳, 금강산)에서 태백산과 지리산을 지나 금성(나주)에 오니, 고을 원이 절도사와 함께 한창 잔치를 벌이는데, 풍악과 기생이 좌석에 가득하였다. 황진이는 다 떨어진 옷에 때 묻은 얼굴로 끼어 앉아서 태연스레 이를 잡으며 노래하고 거문고를 타되 부끄러운 기색이 없으니, 여러 기생이 기가 죽었다.
*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금강산은 반드시 한번 다녀가야 할 곳으로 인식되었다. 금강산뿐 아니라 전국의 명산을 직접 발로 밟으며 견문을 넓히는 것은 사대부들의 한 공부 방법이었다.
한국의 선승(禪僧)들 사이에서 "10년 경전 공부, 10년 참선, 그리고 10년 만행"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같음 맥락이다.
특히 옛 선인(仙人)들의 공부과정 중에는 반드시 만행이 있었는바, 최소한의 여비와 행장으로 맑은 산천을 주유하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기운의 흐름을 알고자 하는, 선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공부내용이었다.
[ 제2장 황진이, 남자를 말하다, 13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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