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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성과 영성을 위한 글/행복 이야기

누구도 마음을 떠날 수는 없다

by 날숨 한호흡 2010. 4. 25.

 

 

마음은 영혼이 숨 쉬는 공기다.

- J. 주베르

 

 

 

 

 

 

레오는 아프리카 대륙의 조그맣고 소박 한 나라에서 태어났다.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큰 가뭄이나 흉작이 들어 어려울 때는

이웃과 가난을 나누고 풍년이 찾아왔을 때는 기쁨을 나누었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크고 작은 내전과 분쟁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레오가 유년을 보낸 고향은 학살의 공포에서도 자유로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 부는 아름다운 언덕에서 친구들과 먼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던 레오는

프랑스로 떠난 삼촌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뛰어갔다.

삼촌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레오, 뺨이 싱그러운 소년이 되었구나!"

 

삼촌은 가족들을 위해 가져온 선물 꾸러미를 풀었다.

레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신 디지털 카메라며 휴대전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옷들이

그의 눈앞에 별천지처럼 펼쳐졌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레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삼촌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파리는 이민자의 천국이란다. 아름다운 밤거리와 매력적인 여자들,

노력만 열심히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기회의 땅이지."

 

레오는 몇날며칠 동안 삼촌의 선물과 사진,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들었다.

마침내 다시 파리로 떠나는 날,

삼촌은 레오에게 자신의 주소와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쥐어주었다.

 

"언젠가 너도 파리에 올 기회가 있을 테니 소중하게 잘 간직해.

아프리카는 큰 꿈을 자긴 사람을 키우기에는 너무 척박한 땅이지."

 

삼촌을 배웅하고 난 레오는 오랫동안 뛰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한 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차츰차츰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 본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문득 레오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레오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이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가난한 곳임을 깨달았다.

삼촌이 준 용돈은,

레오의 가족이 1년 동안 벌어들일 수 있는 돈보다 그 액수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삼촌이 선물한 운동화를 신었을 때는 맨발일 때보다

더 높은 곳까지 쉽게 달려 올라갈 수 있다는 것도 꺠달았다.

호감을 표현하며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여자아이들의 눈 속에서

매력적인 파리의 여자들을 떠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레오는 깨달았다.

고향이란 떠난 자들만이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을 뿐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고통과 좌절의 공간이라는 것을.

 

레오는 삼촌을 배웅했던 길을 따라 떠났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파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삼촌이 준 전화번호와 주소에는 삼촌이 있지 않았다.

별 수 없이 레오는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 나가야 했다.

 

파리는 분명 기회의 땅이었다.

그는 고향사람들 전체의 재산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돈이 있으면 푸른 눈과 금발을 가진 여자를 만날 수도 있었고,

멋진 정장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레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고향에서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는 있었지만,

그는 번듯한 직장을 가질 수 없는 불법체류자의 신세를 면할 수는 없었다.

불법체류자의 삶이란 늘 발걸음에 불행을 달고 다니는 여정이었다.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자긴 돈을 모두 탕진하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을 나가는 지루하고 음험한 일상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레오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파리의 밤거리는 언제나 아름다웠지만,

그는 언제나 화려한 네온사인 밑에서 외로왔다.

 

그런던 어느 날,

레오는 누추한 건물 처마 밑에서 웅크려 앉아 있는 사람을 무심코 지나치다가

깜짝 놀라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사내는 다름 아닌 삼촌이었다. 레오는 삼촌의 어깨를 흔들며 그의 잠을 깨웠다.

눈을 뜨고 힘겹게 미소 짓는 삼촌에게서는 술냄새가 흥건하게 배어 나왔다.

 

"레오구나. 언젠가 너도 파리로 올 줄 알았다."

"삼촌, 어떻게 되신 거예요?"

 

삼촌은 밭은 기침을 하며 간신히 웃어 보였다.

 

"이곳 파리도 사실 큰 꿈을 가진 사람을 키우기에는 척박한 땅이더구나.

여기서도 가난은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더라.

아, 나는 곧 미국으로 갈 거다.

아메리칸 드림!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니!"

 

삼촌은 레오의 손길을 한사코 뿌리치며 비척비척 뒷골목으로 사라졌다.

레오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뼈저리게 고향이 그리웠다.

아니, 아프리카 고향에 두고 온 천진하고 소박한 그 유년의 마음이 그리워 눈이 시렸다.

 

마침내 레오는 깨달았다.

 

마음이 행복을 만들며, 그 행복의 원천을 떠나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마음을 다스리는 기술, 이지드로 페르낭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