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여인의 모든 것은 저의 전체의 어느 곳에도 배어 있었습니다.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느껴지고 있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양지 바른 언덕에 앉아 모든 것을 잊고 많은 날들을 이렇게 날숨만으로 지내고 있을 때 다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있었어?"
"네?"
그 여인의 존재마저도 잊고 지내던 그 긴 시간 속에서 깨어나 돌아보니, 숨을 내쉬던 그 긴 시간에 주변의 모든 것들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역행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차차 역행되는 시간 속에서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계절이 겨울로, 가을로, 여름으로 봄으로 바뀌며, 모든 것들이 거꾸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점차 작아지며 어린 아이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마의 품이 아닌 자연의 품이었습니다. 이 자연의 품이 저를 안고 계속 시간을 역행하여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되 저 혼자만 역행하는 시간을 타고 있었습니다. 유리창처럼 생긴 막의 바깥은 정상적으로 보이고 있는데, 제가 있는 공간의 시간만 역행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점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주 먼 옛날로 들어가니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빛이 있기는 있으나 어떠한 색을 띠는 것이 아닌 희미한 색으로 보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색은 아니었습니다. 허공에 떠 있는 상태로 잠시 있자 다시 주변의 모든 것에 색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호흡은 점차 날숨에서 정지 상태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저길 봐. 저기가 네가 살던 곳이야."
여인이 가리키는 곳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우주가 있었습니다.
"저기가요?"
"그래. 저기가 네가 살던 바로 그곳이야."
"제가요?"
앞에는 수많은 성단들이 엄청난 밝기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는 별들을 보며 낯설기보다는 어딘가 상당히 낯익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별에 제가 살았나요?"
"응. 바로 저 별이야."
그 분이 가리키는 곳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보랏빛 은하가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이는 빛은 보랏빛이지만 자세히 보면 보랏빛만도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각종 빛으로 이루어진 색깔의 바다였습니다.
그 분이 가리키는 별은 파란색이 좀더 진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란색만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저기 너의 별로 돌아가야지."
"지금 와 있잖아요."
"지금은 아주 온 것이 아니야. 네 일을 하고 나면 다시 올 수 있게 돼."
"지금 아주 오고 싶은데요."
그 순간 저는 그 때까지 제가 살던 집도, 놀던 고향도 모두 잊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였습니다. 제 주변의 모든 것이 기운으로 뭉쳐진 하나였습니다. 저의 생각이 움직이면 모든 것이 움직일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고 싶다고 마음 먹는 순간 곧바로 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왠지 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남아 있는 일을 하고 나서 저의 앞에 펼쳐져 있는 그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할 일은 무엇이죠?"
"그건 나중에 차차 알게 돼."
"뭔데요?"
"그냥 있으면 되는 거야."
"그런 일도 있어요?"
"그럼. 자. 이제 돌아가자."
"네."
아쉬운 발길을 돌리려 하자 발길이 돌려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죠?"
"응. 들숨을 쉬면 돼. 자. 이제는 들숨을 쉬어 봐."
"네?"
"이제 들숨을 쉬어야 해."
"네? 들숨이요?"
너무나 오랜 시간을 날숨에 익숙해 있던 저는 들숨을 잊을 만큼 오랜 시산을 날숨으로 지내 온 것이었습니다. 날숨에서 들숨으로 바뀌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 한국의 선인들 2권, 5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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