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의 두 번째는
'살아있는 동안 죽음(영생)을 준비하는 일' 입니다.
삶은 시한적인 것이고 죽음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탄생이기 때문이지요.
식물에도 한해살이, 여러해살이가 있듯이 인간은 여러해살이 동물일 뿐 아니라
폐기처분될 때까지 수없이 환생이 가능한 영성을 지닌 영장류靈長類입니다.
죽음을 준비하여 잘 죽기 위해서는, 영생으로 잘 태어나기 위해서는,
가.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왜 태어났으며, 누구로부터,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아는 것은
나를 알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해답입니다.
부모로부터 태어났다고 하여도 내가 부모님의 소유물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부모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나로부터 태어난 자식도 결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내가 부모님의 것이 아니고 내 자식이 나의 것이 아님은 그 사실만으로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주고받은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이러할진대
부부끼리 서로의 소유물로 착각하여 지나친 간섭을 하는 것은
미숙한 인간들의 횡포이지요.
하물며 나 자신조차도 나의 인생을 내 마음대로 이끌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며, 늙고 싶어 늙은 것이 아니지요.
내가 내 것이고 부모의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이거나 부모의 마음대로 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도, 부모도 알 수 없는 어떤 섭리에 의하여 내 인생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내 것이라면 오늘 일과 내일 일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전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내 것이 아님은 분명한 것입니다.
나뿐 아니라 인간은 어디로부터, 누구로부터, 왜 왔을까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하늘 어딘가에 영혼이 씨앗으로 존재하고 있다가,
조물주님으로부터, 조물주님을 도와 우주의 창조 목적인 우주 전체의 진화를 주도하기 위해,
우주의 법칙에 따라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조물주님이 정해놓은 우주의 법칙 중 인간 창조의 법칙과,
각 인간의 진화의 사이클에 따라 그 인간의 금생의 스케줄이 프로그램된 룰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각 개인의 스케줄이 프로그램된 장부를 명부命簿라고 하며,
스케줄은 그 인간의 인과응보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지요.
인간은 지구에 태어날 때는 자신의 의지가 5% 정도, 하늘의 뜻이 95% 정도 주어지다가
진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비율이 바뀌어서 끝내는 95%의 자유의지대로
자신의 명을 이끌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 진화의 법칙이지요.
100%는 조물주님만이 가능하다고 하나 조물주님조차도 자신이 정해놓은 우주의 법칙,
조물주님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이 창조해 놓은 만물의 뜻도 살펴야 하므로 어느 누구도 완전 100%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이것을 아는 것이 깨달음의 시초이며, 우주 창조, 지구 창조, 인간 창조의 목적과
우주 진화에 동참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 수선재입니다.
나. 죽음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죽음에 대한 인식과 신념에 따라 인간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천태만상입니다.
죽음은 갑작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에 인간의 진화 정도와 품위는
그 인간의 죽음의 순간에 결정되지요.
인간에게서 가장 어리석고 이상한 점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정사실화된 죽음을 맞이하면서 허둥대고, 망연자실하며,
뜻밖이라는 듯이 한이 맺히면서 가게 되지요.
인간은 진화의 정도에 따라 단순한 명命 또는 사명이나 소명, 역할을 부여받아
학교인 지구에 나옵니다.
즉 태어나면서 공부할 양과 역할에 따라 수명을 부여받고 나오지요.
정해진 기간 안에 자신이 해야 할 공부나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수련에 드는 인간들은 모든 것이 수련 안에서 진행되므로 변수가 많지 않으나
수련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인간들은 보호나 인도를 받지 못하여
뒤죽박죽 살다가 허둥지둥 가게 되지요.
삶은 영생을 위한 준비기간으로서 필요한 것입니다.
꽃이 지면 열매가 남듯이 삶은 꽃이고, 죽음은 씨앗으로 남아 하늘 어딘가에 보관되는 것이지요.
보관되는 곳은 삶 동안의 결과를 보아 정해집니다.
진화의 수준이 높을수록 높고 좋은 곳에 보관될 뿐 아니라
이번에는 생명이 아닌 명命이 부여되지요.
아주 높은 영靈들은 죽자마자 사후의 역할이 주어집니다.
그들의 지상에서의 삶은 잠깐 동안 옷을 바꿔 입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복귀하자마자 본래의 역할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그들의 사후의 위치도 인간으로 있을 때의 공부 결과에 따라 바뀌거나 정해지는 것이지요.
이들을 선인仙人이라고 하며 선인들은 쉬는 일은 없습니다.
상천 수준의 영들은 영체靈體로서 상천에서 역할을 부여받거나 쉬거나 공부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지요.
중천 수준의 영들은 기인氣人 즉 기적인 생명체로서 사후세계에서 역할을 하거나
공부하면서 살아갑니다.
기인들도 쉬는 일은 없습니다.
하천 수준의 영들은 그저 어두운 창고에 보관되어 차후 어딘가에서 태어나거나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있습니다.
이들을 영인靈人이라고 하며 몸체를 지니지 않은 영의 상태로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생전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은 중천 이상의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서
지상의 종교가 지향하는 곳은 중천이며,
지상에서 특별히 역할을 잘한 분들은 상천까지 갈 수 있습니다.
원래는 선인이었으나 사명으로 인하여 종교지도자의 역할을 잘하셨던 분들은
선계로 복귀하지요.
수선재가 가고자 하는 곳은 선계이며
선계는 상천을 지나 또 하나의 관문인 팔문八門을 열고 들어가야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다. 비워야 합니다.
인간의 진화의 수준을 결정하는 잣대는 기운입니다.
선인이나 영체, 기인, 영인들 모두가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우주에서 한 인간의 수준을 평가할 때는 기운의 모습을 보아 결정하지요.
숨길 수도 감출 수도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 기운입니다.
기운의 맑음, 밝음, 따뜻함으로 한 인간의 격이 정해집니다.
기운이 맑고, 밝고, 따뜻하려면 몸이 그래야 하고, 생각이 그래야 하며,
마음이 그래야 하고, 마음이 그렇게 되려면
우주 원래의 상태인 공空의 상태로 되어야 합니다.
진공眞空상태인 본성本性은 허공虛空 속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마음이 비워져야만 기운이 가벼워져서 영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짐이 없을수록 높이, 멀리 갈 수 있으니까요.
마음을 비우는 순서는 물질을 비우고, 감정을 비우며, 생각을 비우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물질이 몸을 지배하고, 몸이 감정을 지배하며
감정이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물질의 비움은 본래 왔던 상태대로 씨앗인 영靈 하나만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며,
감정은 희로애락애오욕을 죽는 순간까지 몽땅 버리고 가는 것이고,
생각의 비움은 본성本性으로 회귀한다는 근본 하나만 잊지 않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목적지는 알아야 여행이 즐거울 수 있으니까요.
물질을 비우는 방법은 지상의 환경에 자신의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시신조차도 남기지 말고 화장하여 자연으로 곧바로 돌아가는 것이며,
무덤이나 비석이라고 표현되는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모양인 죽은 자의 집을
자연과 후손에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감정을 비우는 방법은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가 잘 된 인간일지라도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하는 감정은
두려움과 허무라는 두 가지입니다.
두려움은 사후세계나 우주의 법칙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고,
허무 또한 한 번의 삶이 끝이라고 알고 있으므로
유한하고 변화하는 삶에 대한 애착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 또한 무지가 가장 큰 원인이지요.
변한다는 것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므로
오히려 반가운 일입니다.
죽음 또한 낡고 병든 몸을 버리고 새로운 생을 받는 일이므로 더없이 반가운 일이지요.
인간은 공부를 위해 태어나는 것이고, 지구는 학교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것들이 경험을 통하여 자신을 풍부하게 만드는 교재였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기뻐할 것입니다.
'생'은 태어남이 즐겁고, '로'는 자신의 연륜이 쌓여가므로 즐거우며,
'병'은 자체의 건강치 못한 부분을 알려줘 고맙고,
'사'는 살아있는 동안의 결실을 마감할 수 있게 해주니 고마운 것이 아닐지요.
세상은 온통 즐겁고 고마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비우는 방법은 본성의 표현인 선서仙書의 상태로 자신을 일체화 시키는 것이지요.
매 사안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이 따로 없다는 것처럼 가볍고 편한 것은 없더군요.
비우는 연습이 놀이가 되어 죽는 순간에는 남김없이 비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경험이 축적된 알찬 영이 되어 돌아가니 남는 장사가 아닐런지요.
라. 나눠야 합니다.
비우는 방법에는 버리는 방법과 나누는 방법이 있습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은 자신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움을 돕는 방편으로
남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자신에게서 비우는 것을 길가에 놓아둔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쓰레기가 되어 자연에게나 타인에게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비우는 방법은 자신에게서 남아도는 것을 모자라는 분들에게 나누는 것이지요.
그 방법의 하나로 뇌사 시 시신이라도 필요로 하는 분들이게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의 장기기증은 수련이라는 절대 절명의 과제가 있는 수련생의 경우에는 조심스럽습니다.
기운은 흐르는 것이므로 주고받음이 원활할 때 유통이 원만해지지요.
물질도 기운이므로 물질을 주고받을 때 흐름이 원만해져서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버림과 나눔의 장소로서 믿음이 가는 곳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혼자 해결하는 것보다는 그런 곳을 활용하는 것이 신경 덜 쓰는 일이지요.
버리는 일에도 힘이 드니까요.
하늘의 장부에는 대차대조표라는 것이 있어서 그 기록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의 경우에는 하늘에, 자연에, 인간에, 세상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남아도는 것뿐아니라 유용한 것을 아무거리낌 없이 나누게 될 때
더욱 큰 축복이 내려지더군요.
하늘의 속성은 인간들에게 빚지고는 못 사는 성향이기 때문에
반드시 언젠가는 누구를 통해서든 기하급수로 돌려주시더군요.
좋은 것뿐 아니라 나쁜 것도 그러합니다.
하늘의 뜻은 물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제대로 쓰일 곳에서 쓰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운을 조절한다는 것은 이런 뜻이지요.
부의 분배와 유통은 하늘의 뜻을 잘 알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풍요과 빈곤이 현격하게 나뉘어 있는 지구에서 모든 물질에게 제자리를 찾아주려는 것이지요.
나눔에는 또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정신을 나눌 때 명심해야 할 것은 고통을 나눔은 삼가야 하며,
기쁨을 나눔은 많을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정신의 나눔은 기쁨의 파장을 배가시키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정신이나 가진 것이 없어 타인과 나눌 것이 없다면
적어도 한숨만은 남과 나누지 않아 죄라도 짓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착한데 어두운 분들이 좋은 곳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한숨 때문이지요.
한숨은 한 숨이지만 그 무게는 천근만근이랍니다.
수선인에게는 어느 누구도 지니지 못한 선서와 우주 기운이 있지요.
그것을 나누는 것만큼 귀한 일은 없습니다.
수선재의 맑고, 밝고, 따뜻한 파장으로 세상의 무게를 한 줌이라도 덜어내기를 바랍니다.
이상 여덟 가지 가치태도 이외에는 이 세상에서 중요한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건강이나 자유조차도
위와 같은 근본적인 가치태도가 확립되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수선인들이 천지만물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매순간은 아닐지라도 감정의 끝은 언제나 감사함으로 회귀하는 것이
수선인들이 살아가는 태도일 것입니다.
자신은 우주의 크나큰 선물로 세상에 나온 것이고, 옆에 있는 분들도 그렇습니다.
[ 수선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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