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이상한 느낌,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이다.
그 느낌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무엇인가 확인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이 이상한 느낌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아니 없애기보다는 어떠한 부분에서 일어나는 문제인가를 확인하여
이것을 알아내야만 사라질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았다.
이상한 기억?
일곱 살 때부터의 기억이 희미하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지함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깜빡 졸았다.
꿈속에서 지함은 서당에를 가고 있었다.
전에 다니던 서당이었다.
그 서당에서 지함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다른 학동들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으나 지함의
표정이 마치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무엇인가 마음속으로는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다른 일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다른 생각을 깊이 하고 있으면서도 공부는 공부대로 하고 있었다.
그 다른 생각이 무엇인가 알 수 있다면
지함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면서 어떠한 일을 할 수는 있다.
지함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으나
그 다른 생각은 지함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지함이 서당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지함은 사실상 선계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몸을 간직한 채 선계의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지함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이 가능하였던 이유는 바로 동막 선생의 지함에 대한
특별한 수업방법 때문이기도 하였다.
동막 선생은 속(俗)의 공부를 그대로 하면서도
선계의 공부를 할 수 있는 이중적인 방법을 통하여
지함의 선인화를 돕고 있었다.
이러한 방법은 선계의 인가를 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방법으로서
사실상 두 사람의 지함이 있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공부를 하였을 경우
지상의 인간은 갑자기 많은 세월이 흘러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다른 사람 같은 모습으로 여러 해를 살아버리는 것이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도 약간 이상하다는 정도였다.
이러한 방법은 특이한 방법으로서 아무에게나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상에 남아있는 또 하나의 지함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하여는
보통 사람 정도의 기적인 교류가 있어야 하였다.
몸은 속세에 있어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나
영체만 선계에 올라가 공부를 하고
다시 지상의 육신으로 돌아오는 공부란
수련이 고도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한 선계의 어느 한 분이
이를 보살피고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 줄 때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보살핌은 동막 선생의 수준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었으며,
지함의 경우는 동막 선생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선인으로부터의 도움을 기대한다는 것은
대부분 인간이 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선계에서 먼저 도움을 주려는 의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선계의 도움이란 것은 선인 한 분의 의사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며
선계의 일정에 들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선계의 일정은 우주의 행사를 전체적으로 준비하는
'천정루'에서 관장하는 일로서 이곳에서 지상의 일을 내려다보며
조정하는 선인이 일정에 포함시켜 주어야 되는 일이었다.
지함은 선계의 뜻을 지상에 펴는 일을 담당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일을 하기에는 당시의 수준으로서
지상에서의 지식만 가지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료가 있기는 하였으나 이 자료를 입수한다는 것이 상당히 곤란하였고,
입수한다고 하여도 이 자료의 의미를 정확히 해석하고
받아들인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따라서 정확한 보조자가 있어 이를 도와주어야 하였으나
당시 지상의 인물들로서는 이러한 임무수행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므로
동막 선인이 직접 지함의 지도를 담당하게 된 것이었다.
선화공(선화를 통하여 속세의 몸은 그대로 놓아두고
정신만 가상세계에서 현실과 동일하게 공부하는 방법)은
인간에게 두 배의 시간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으며,
지함의 경우는 7세에서 16세까지 10여 년의 세월을
선계로부터 지원 받은 효과가 있었다.
이러한 효과는 범인의 경우 수 생을 더 살아도 알 수 없을 정도의 배움을
단시일 내에 거두어들이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서
지함이 선화(仙畵)를 통하여 선계에 진입하여 공부한 것은
사실상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근본원리를 통찰할 수 있는 기초를 이미 완성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전 공부는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서
특별히 선정된 소수의 선인들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지함은 이 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문답을 하였으며
이 문답은 한 번으로 수백에서 수천의 문답을 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어서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었다.
지함의 이러한 공부방법은 앞으로도 다른 선인들이
사용하기에 쉽지 않은 방법이었으며,
따라서 극히 제한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란 것은
지함이 앞으로 할 일이 그만큼 많고도 중요함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지함이 선화를 통하여 선계의 공부를 하고 있는 동안
속세의 지함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항상 무슨 생각인가를 골똘히 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생각을 하는 모습이 너무 진지하여 다른 사람이
말을 붙이기에도 어려울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정신이 없는 것 같기도 한 상태로서
서당에 다녀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박혀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문득 문을 열어보면 많은 종이들이 책처럼 쌓여있었으나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을 허용치 않아서
부모들도 지함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지함을 믿고 있을 뿐이었다.
지함은 매일을 그렇게 보내면서도
신체적으로는 무럭무럭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행동을 하면서도 지함의 얼굴에는 훤히 빛이 나고 있었다.
매일 지함이 적어서 쌓아놓는 종이들이 쌓여갔다.
부모들은 지함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도
지함에 대한 믿음으로 매일을 평안히 보내고 있었다.
언젠가 아버님께서 선계 공부의 어느 경우에는
일정 시점에 자신을 떠나는 공부가 있으며
이 시기에는 다른 사람과의 말이 극히 줄어들고
대신 자신의 내면을 통하여 선계를 직접 받아들이는
공부를 하는 경우가 있음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러한 기간은 상당기간을 갈 수도 있으며
전에 한 선배 선인은 20여 년을 이러한 공부를 하신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분께서는 동굴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셨으며,
이 기간동안에 처음에는 집안식구들이 교대로 먹을 것을 가져다 놓으면
먹으면서 공부를 하였으나 나중에는 그러한 것마저 없이
생식으로 버티면서 공부를 하셨다고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 기간 중에는 극도로 말이 줄어들며,
이 무언행(無言行)이 바로 선계수련에의 본격적인 진전을
말해주는 것임을 알고 있던 진화는 지함의
이러한 공부가 어쩌면 다행이 아닌가 싶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그 선계 수련이 너무 오래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탐구인가? 아니면 진정한 선계수련인가?'
무엇인가를 써서 옆에 쌓아놓는다는 것은
어떠한 결과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량이 만만치 않음을 보면 공부의 량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 높이가 10여 년이 다 되어 가는 최근에는 거의 키 높이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 동안은 지함이 극히 말을 자제하였으므로
대부분 글로 써서 문 앞에 붙여놓고는 하였다.
'먹이 필요하니 5개만 구해주세요.'
모든 것이 이러한 식이었다.
그 동안 들여놓아 준 먹과 벼루만도
여러 개 되어 이제는 몇 개인지를 잊을 지경이었다.
지함의 공부를 바라보면서 진화는
이 녀석이 공부를 하기는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지함의 모습이 의젓하게 바뀌면서 그 나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말이 없을 뿐 아니라 모든 행동이 과묵하기 그지없었다.
선계수련은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하였다.
이 다양한 방법 중에 하나의 방법으로서
묵언 수련이 있다고 들었다.
아마 지함이 하고 있는 수련이 바로
이 묵언 수련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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