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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112)

by 날숨 한호흡 2008. 5. 26.

 

 

 

선인이 되는 길은 너무나 멀고 먼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너무나 가까운 길인 것 같기도 하였다.

자신도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면서 어쩌면 갈 수 없을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있는 부분이 많은 것은 틀림없었다.

지함은 자신의 공부 속에서 점차 자신이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모든 공부과정이 눈앞에 스쳐갔다.

 

쉬운 것은 아니었으나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긴장하지 않고 그 과정을 넘기다가 하나 하나를 놓친다면

큰 공부를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였다.

작은 공부가 큰 공부였으며, 큰 공부가 작은 공부였다.

모래 한 알속에 우주가 있었으며 우주가 먼지 한 알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공부였다.

 

이 공부란 것은 기운을 모르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허나 그 기운이란 것이 그리 쉽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운을 알고 나면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있었으나 기운을 잘 모르면 그것을 잘 해석할 수 없었다.

해석을 잘 못하면 이해가 안되므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곧 공부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천기란 가볍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지기를 알고 나서

천기를 알기까지는 상당한 단계의 노력이 필요하였다.

천기란 그만큼 미세하면서도 맛이 미미하여 범인들이 느끼기에는

상당한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 노력도 대충 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뼈를 깎는 고행이 필요하였다.

그만큼 천기란 많은 것을 겪고 비우고 나서야 알아낼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인연과 능력이 없는 인간의 수준에서 바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만하면 인연은 된 것 아닌가?

인연이 되었다면 노력만 있으면 된다는 것인가?

그 정도면 반은 된 것 아닌가? 하지만 완전한 것은 없다.

나의 힘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여부가 결정할 것이다.'

 

이제 속세로 내려간다.

속세는 선계와 달리 공부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모든 것들을 겪어내면서 공부를 하여야 하는 곳이다.

이러한 곳에서 효과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발끝에 찬 공기가 느껴졌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지함은 거의 속(俗)으로 내려왔음을 알 수 있었다.

선계란 곳이 과연 높은 곳에 있기는 한 것 같았다.

한 참을 아니 며칠을 내려온 것 같은데 바닥 가까이에 오다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 마을이 보였다.

풍선에 매달린 것처럼 아래가 보였다.

그런데 전과는 무엇인가 달라진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풍경도 달라졌지만 무엇인가 다른 것도 달라진 것이 있어 보였다.

 

아마도 선인이라면 이러한 차이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속인이 다 되어서 그 감각이 사라진 것 같았다.

간단한 것도 알 수 없을뿐더러 깊이 있는 것은 더욱 모르겠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동네사람들도 달라진 것 같았다.

전보다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하는 일도 달라진 것 같았다.

무엇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달랐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잘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그것보다 무엇이 변한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더 바쁘게 생각이 되었다.

지함은 거의 땅으로 내려왔다.

약 서너 길 정도 공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전에 친구처럼 서당을 함께 다니던 서막이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서막이는 서당에서 진도를 앞서나가던 지함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책을 떼곤하여 지함을 긴장시키던 친구였다.

이 친구가 지금 바로 아래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함은 서막이를 불러 세우려 하였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 아직 완전한 인간이 아니구나.'

지함은 자신이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이 아직 인간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임을 알았다.

서막이를 불러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나의 음성을 서막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아직 인간이 아니고 반은 선인으로서 있는 이상 인간으로 있는 서막이가

알아듣기를 바란다는 것이 무리가 아니겠는가?

 

'반인 반신의 단계'

인간이 아니고 아직은 신의 단계에 있으니 완전한 인간의 파장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인간의 가청(可聽) 파장을 사용하지 못함으로 인간이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들을 수 있기 위하여는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사용하여야 하는데

이 인간의 가청음이란 극히 제한된 영역의 파장이었다.

지함은 그래도 혹시 소리를 내볼까 하여 서막이를 불렀다.

 

"서막이......"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았으나 지함은 나름대로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서막이를 불러 보았다.

역시 서막이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옆에 가던 개가 지함을 올려다보면서 짖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 개는 내가 서막이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단 말인가?'

동물의 경우 이 가청음의 영역이 넓어서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사실인 것 같았다.

저 개는 내가 꼭 사람으로 있으면서 부르는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개도 소리를 듣기는 하였으나 지함의 모습을 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소리는 들리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아 개도 이상한 것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내려다보다가 하면서 다시 서막이를 따라가고 있었다.

서막이는 개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짖어대자 실없이 하늘을 보면서

짖어대는 개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저 개가 알 수 있을까?'

개의 몸짓으로 보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이상한 느낌을 받아서 그러한 것이 아닌가 의문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개의 의견이 읽어져 오는 것을 보니 이것도 재미있었다.

짐승이라고 해서 인간보다 못하기만 하란 법은 어디에 있는가?

오히려 인간보다 나은 점도 있을 것이다.

그 점을 잘만 이용하면 많은 도움이 있지 않겠는가?

 

지함은 친구인 서막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다행이었다.

만약 알아본다면 공중에 떠 있는 자신을 보고 난리가 날 것이고,

이러한 일이 생긴다면 자신의 수련을 위해서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지함은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수련을 함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조용히 돌아가는 것이다.'

헌데 지상에 가까이 내려가면서 서막이의 키를 보니 상당히 컸다.

자신보다 많이 더 큰 것 같았다.

전에는 비슷했었는데 어디에서 이러한 차이가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는 어른의 키가 거의 다 된 것이었다.

얼굴이야 아직 아이들 티가 났지만 키로 보며 어른 키와 같을 정도였다.

 

'무슨 조화일까?'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흐른 것일까?

나는 지금 정신만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몸은 어떻게 되었을까?

서막이처럼 더 자라기는 했을까?

아니면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의 세상이 그리워지기는 또 처음인 것 같았다.

선계에서는 선계만이 모든 것의 전부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다시 인간의 세상으로 내려와 보니 다시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참으로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그 엄청난 시련의 연속인 속세로 내려왔으면서도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었다.

이러한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여야 할 것인가?

 

'유혹인가?'

아직 나에게 인간세상의 유혹에 끌릴 소지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도 지상을 떠나 선인이 되고자 수련을 하고 싶어하였으면서

지금 다시 인간세상을 보니 다시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아직 인간임을 증명해 주는 더 이상 없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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