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내가 두 사람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나?
아니 두 사람인 것은 확실한가?
지함은 또 하나의 자신을 돌아보며 공중에 떠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안에 앉아 있는 자신과 공중에 떠 있는 자신은
거리가 불과 한 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계속 몸이 일렁이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떤 기운이 지함의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기운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을 위하여 모여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보이지 않으나 밀도 있는 기운들이 자신을 압박해 왔다.
압박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며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방향은 전부 기운이 점점 진해지고 있으나
한 방향만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한 쪽만이 기운이 약한 상태였다.
바로 자신의 몸이 앉아 있는 방향이었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자 어딘가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몸이 열리다니?'
지금까지 내려다 본 자신은 하나의 완벽한 인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그 읽은 책의 내용이
공중에 떠 있는 나에게 전달되어 오지 않던가?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보이고 있는 것은 어떠한 생명이 나간 옷처럼 보였다.
인간이 이렇게 보일 수 있다니?
허물벗은 매미처럼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사람인 내가 어떻게 그렇게 보일 수 있나?'
방금 전까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완전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였었다.
그런데 순간에 다른 사람이,
아니 사람이 아닌 옷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사람이 옷처럼 느껴질 수 있다니, 그것도 내가?
이제는 다시 인간 이지함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지함은 자신의 몸을 향하여 내동댕이쳐졌다.
너무도 갑자기 모든 기운이 움직였으므로 어떠한
대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등뒤에서 앉아있는 자신을 향하여 벼락치는 소리를 내며 밀려 내려갔다.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은 엄청난 힘이 등뒤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지함은 정신을 잃었다.
천지가 아우성을 치며 한 곳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그 천지의 아우성 한가운데에 자신이 있었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렇게 되는 것인가?
문득 잠이 깬 지함은 책상 위의 책을 보았다.
'선화요람'
한문소설.
책의 내용이 너무 재미있었다.
주인공이 선계에 들어가 수련지도를 받고
속세로 돌아오는 내용이었다.
상상 속에서 추상적으로 알았던 선계의 내용들이
많이 구체화되는 것 같았다.
그 책을 어제부터 읽다가 끝내 다 읽지 못하고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헌데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깬 지금 그 책의 내용이 너무도 생생하였다.
그 책에서 본 내용들이 방금 겪은 것 같았다.
선화(仙畵)라는 그림을 가지고 있는 집에서 일어나는 내용이었다.
그 집의 사람들은 그 그림을 통하여 선계를 드나들 수 있어서
항상 선계를 옆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자신 역시 방금 선계에서 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자신은 책을 통하여 선계를 다녀온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다녀온 것 같은 생각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방금 책에서
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마치 다른 자신이 된 것 같은 느낌.
그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그 책의 어디에 이런 힘이 실려 있는 것인가?
겉으로 볼 때는 평범한 책 중의 하나였다.
그저 서당에서 재미있어 보여서 빌려온 책이므로
다른 책처럼 보통 책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그냥 책이 아닌 것이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 책을 통하여
어디론가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 속에서 선화라는 그림이 나왔었다.
그 그림은 무엇이든지 보여줄 수도 있고,
느끼게 할 수도 있으며, 그 그림 속에 또 하나의
기적인 현실세계가 있어 신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하였다.
무릉도원이란 이 선화 속에 한 곳에 불과하였다.
그 정도는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을 정도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 책을 통하여 나도 선계에 다녀 온 것인가?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것은 분명하였다.
무엇인가 하여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 하여야 할 일은 반드시 내가 하여야 할 일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
무엇일까?
그 일을 하는 것이 내가 금생에 태어난 이유일 것이다.
'이유'
내가 태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인가?
무엇을 위하여?
지함은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인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헌데 지금 무엇을 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답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어찌 구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코 쉬운 답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답을 할 수 있으려면
그만한 답을 구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어야 하였다.
지함은 자신의 나이를 생각해 보았다.
이제 16세.
결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였다.
이 나이로 무엇을 할 수 있기보다는 아직 배우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나이인 것 같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가?
결코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었다.
아직은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이 모르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나의 공부는 이제 시작인 것이다.
어딘가 다녀왔으나 이 다녀온 것이 기억에는 생생함에도
무엇인가 확실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누가 물어보면 대답을 할 수는 있어도
그것에 대하여 증거를 보여줄 수가 없었다.
너무도 생생한 기억들이 모든 것들을 잊지 못하도록
어떠한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앞에 펼쳐져 있는 책 속에도 그 답은 나와있지 않은 것이다.
'이야기하지 말자.'
혼자 알고 있어야 할 일 같았다.
아버님께서도 나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계신 것 아닐까?
지함은 지금까지의 기억을 잘 살펴보았다.
왠지 사라져버린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일곱 살까지는 기억에 생생한데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였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지함은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자 생각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
서당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한 것이 지금까지 쌓여온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선계에 대하여 공부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현실이 동떨어진 느낌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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