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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114)

by 날숨 한호흡 2008. 5. 26.

 

 

 

과연 내가 두 사람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나?

아니 두 사람인 것은 확실한가?

지함은 또 하나의 자신을 돌아보며 공중에 떠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안에 앉아 있는 자신과 공중에 떠 있는 자신은

거리가 불과 한 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계속 몸이 일렁이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떤 기운이 지함의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기운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을 위하여 모여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보이지 않으나 밀도 있는 기운들이 자신을 압박해 왔다.

압박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며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방향은 전부 기운이 점점 진해지고 있으나

한 방향만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한 쪽만이 기운이 약한 상태였다.

바로 자신의 몸이 앉아 있는 방향이었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자 어딘가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몸이 열리다니?'

지금까지 내려다 본 자신은 하나의 완벽한 인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그 읽은 책의 내용이

공중에 떠 있는 나에게 전달되어 오지 않던가?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보이고 있는 것은 어떠한 생명이 나간 옷처럼 보였다.

인간이 이렇게 보일 수 있다니?

허물벗은 매미처럼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사람인 내가 어떻게 그렇게 보일 수 있나?'

방금 전까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완전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였었다.

그런데 순간에 다른 사람이,

아니 사람이 아닌 옷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사람이 옷처럼 느껴질 수 있다니, 그것도 내가?

이제는 다시 인간 이지함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지함은 자신의 몸을 향하여 내동댕이쳐졌다.

너무도 갑자기 모든 기운이 움직였으므로 어떠한

대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등뒤에서 앉아있는 자신을 향하여 벼락치는 소리를 내며 밀려 내려갔다.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은 엄청난 힘이 등뒤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지함은 정신을 잃었다.

 

천지가 아우성을 치며 한 곳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그 천지의 아우성 한가운데에 자신이 있었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렇게 되는 것인가?

문득 잠이 깬 지함은 책상 위의 책을 보았다.

 

'선화요람'

한문소설.

책의 내용이 너무 재미있었다.

주인공이 선계에 들어가 수련지도를 받고

속세로 돌아오는 내용이었다.

상상 속에서 추상적으로 알았던 선계의 내용들이

많이 구체화되는 것 같았다.

 

그 책을 어제부터 읽다가 끝내 다 읽지 못하고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헌데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깬 지금 그 책의 내용이 너무도 생생하였다.

그 책에서 본 내용들이 방금 겪은 것 같았다.

선화(仙畵)라는 그림을 가지고 있는 집에서 일어나는 내용이었다.

그 집의 사람들은 그 그림을 통하여 선계를 드나들 수 있어서

항상 선계를 옆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자신 역시 방금 선계에서 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자신은 책을 통하여 선계를 다녀온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다녀온 것 같은 생각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방금 책에서

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마치 다른 자신이 된 것 같은 느낌.

 

그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그 책의 어디에 이런 힘이 실려 있는 것인가?

겉으로 볼 때는 평범한 책 중의 하나였다.

그저 서당에서 재미있어 보여서 빌려온 책이므로

다른 책처럼 보통 책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그냥 책이 아닌 것이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 책을 통하여

어디론가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 속에서 선화라는 그림이 나왔었다.

그 그림은 무엇이든지 보여줄 수도 있고,

느끼게 할 수도 있으며, 그 그림 속에 또 하나의

기적인 현실세계가 있어 신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하였다.

무릉도원이란 이 선화 속에 한 곳에 불과하였다.

그 정도는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을 정도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 책을 통하여 나도 선계에 다녀 온 것인가?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것은 분명하였다.

무엇인가 하여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 하여야 할 일은 반드시 내가 하여야 할 일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

 

무엇일까?

그 일을 하는 것이 내가 금생에 태어난 이유일 것이다.

 

'이유'

내가 태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인가?

무엇을 위하여?

지함은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인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헌데 지금 무엇을 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답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어찌 구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코 쉬운 답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답을 할 수 있으려면

그만한 답을 구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어야 하였다.

지함은 자신의 나이를 생각해 보았다.

이제 16세.

 

결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였다.

이 나이로 무엇을 할 수 있기보다는 아직 배우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나이인 것 같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가?

결코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었다.

아직은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이 모르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나의 공부는 이제 시작인 것이다.

어딘가 다녀왔으나 이 다녀온 것이 기억에는 생생함에도

무엇인가 확실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누가 물어보면 대답을 할 수는 있어도

그것에 대하여 증거를 보여줄 수가 없었다.

너무도 생생한 기억들이 모든 것들을 잊지 못하도록

어떠한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앞에 펼쳐져 있는 책 속에도 그 답은 나와있지 않은 것이다.

 

'이야기하지 말자.'

혼자 알고 있어야 할 일 같았다.

아버님께서도 나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계신 것 아닐까?

지함은 지금까지의 기억을 잘 살펴보았다.

왠지 사라져버린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일곱 살까지는 기억에 생생한데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였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지함은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자 생각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

서당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한 것이 지금까지 쌓여온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선계에 대하여 공부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현실이 동떨어진 느낌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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