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111)

by 날숨 한호흡 2008. 5. 26.

 

 

 

숨을 쉴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숨으로 천연을 찾고 그 천연을 통하여 자신을 찾아야 했다.

보통의 인연이 호흡을 통하여 천연으로 바뀐다고 해서

모든 것이 성취되는 것은 아니었으며 이 천연의 실오라기를 잘 당기고 당겨서

자신을 묶어 올릴 수 있는 끈을 만들 수 있어야 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피 말리는 고통스런 수련 끝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수련은 쉽고도 쉬운 과정이었다.

스승님께서 알려주시는 대로 가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마도 스승님께서 계시지 않는 길을 혼자서 가야 할 것이었다.

독련(獨鍊)이 가능키 위하여는 그만큼의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며

이 곳 선계에서 본 모든 것들을 실제로 겪어가면서 찾아가야 할 것이었다.

 

속에서 스스로 노력한다 함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제일이오,

현재의 자신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둘째이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그 위에 또 하나 선인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선인의 길을 완성시키지 못하면 나의 지금까지의 값어치는 없을 것이다.

무엇으로 살았다고 할 것인가?

 

'선인의 길'

누가 갔는지는 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안다.

하지만 그 분들을 만날 수 없다.

동막 스승처럼 기다려 주신 분들만 계시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보통 사람 같아 선인임을 밝히지 않는다면 누가 선인인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인의 길이란 너무도 다양한 것 같았다.

아주 평범하여 누가 보아도 선인인줄 모르는 선인의 길이 있는가 하면

아무나 보아서도 선인임을 알 수 있는 선인의 길도 있다.

어떤 선인은 정말 너무나 평범하여 누가 보아도 선인인줄 모르고 있었으나

나중에 선인임이 밝혀진 적도 있지 않던가?

속인 중에서도 속인인줄 알았던 그 분도 선인이 아니었던가?

동네 어귀에 혼자 사시며 세상의 모든 걱정을 도맡아서 하고 계셨던

그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나서야 시신을 치우던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이야기했을 때도 동네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아마 지금도 모를 것이다.

시신의 상태가 너무도 생존해 계실 때와 같았으며,

숨을 쉬고 계시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사람들이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기도 하다가 며칠을 기다려 장례식을 치르지 않았던가?

 

생사의 단 한가지 차이점은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닌지 밖에 없었다.

의원이 맥을 보았을 때 맥도 없으면서도 몸은 살아 계시는 것 같지 않던가?

머리맡에 써 놓으신 몇 글자를 보고 사람들은 노인께서 돌아가셨음을 알아챘던 것이다.

 

"성고산 응달 말에 묻어주소."

유언이었다.

왜 응달 말이었을까?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응달'

다른 사람 같으면 양지에 묻어달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노인은 돌아 가시면서도 응달에 묻어달라고 하였다.

무엇이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어두운 곳에서

힘들고 어두운 다른 중생들이 걸어가는 길을 살펴보고 계신 것은 아닐까?

지함은 문득 지금 그 노인의 파장이 전해져 옴을 느꼈다.

순도 높은 저 파장 대역의 은은한 파장이었다.

따뜻했다.

 

어쨌든 선인의 길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러한 구분은 아마도 그 생에 타고난 자신의 일에 따라 구분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일이 중생들 사이에 섞여 제도하는 것이면

완벽한 중생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이오,

중생들로부터 벗어나서 제도하는 일이라면

중생과는 무엇인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 같았다.

 

나의 모습은 어떤가?

나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나 선인들이 보실 때 어떻게 보일 것인가?

다른 모습일까?

같은 모습일까?

현재의 나의 모습은 그들이 보는 것과 같을 것인데

앞으로 내가 지향해야 할 부분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아마도 처음에는 중생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깨닫기에 따라 점차 선인의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이 아닐까?

선인의 경지란 너무도 오묘하여

그 길을 알 수 있는 경우가 알 수 없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 알 수 없는 경우 중에 내가 걸어가는 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지함은 심호흡을 하였다.

 

선계의 맑은 공기가 가슴으로 들어왔다.

이 공기를 다시 마실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속세로 내려간다는 것이 꼭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에는 전혀 몰랐던 느낌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물 속 같이 느껴지다니......

이곳의 공기와 지상의 공기가 달라서일까?

지상의 공기 밀도가 높아서는 아닐 것이다.

수준이 다른 것 같았다.

선계와 속계는 그 위치가 달라서 느낌도 다른 것 같았다.

동막 스승이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잘 다녀오너라."

다녀오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다시 올 수 있는 자격을 얻었음인가?

기쁨이 마음이 밑바닥에서 솟아올랐다.

하지만 가벼이 드러내어 표현하면 안될 것 같은 경건함이 가슴의 밑바닥에서 밀려올라 왔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하거라."

 

"네. 스승님. 하오면 스승님께서는 더 내려가시지 아니하시는지요?"

 

"나는 이곳에서 더 할 일이 있음이다. 다녀오도록 해라.

 

공부란 절대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것이며 속에 내려가서 공부하는 도중 이제는

더 이상 물어볼 곳도 없으니 모든 것을 공부라고 생각하고 지낸다면 실수는 없을 것이다."

 

"네."

지함의 앞에 눈물이 어른거렸다.

이제 스승님의 곁을 떠난다.

하염없는 은혜를 입은 스승님의 곁을 떠나 홀로 수련의 길에 드는 것이다.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나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어야 온전히 수련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지함은 스승님께 삼배를 올렸다.

고이 삼배를 올리고 나서 스승님께서 서 계시던 자리를 보자 스승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주변 모습들까지 변하여 있었다.

상세히 보이던 모든 것들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손에 잡힐 듯 보이던 것들이 점점 멀어져 가는 듯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듯 보였다.

손을 내밀어 보아도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지함은 앞에 보이는 나뭇가지로 손을 내밀어 보았다.

나뭇가지가 손에 잡히지 않고 빠져나갔다.

 

'역시 내가 지금 속(俗)으로 돌아가고 있다. 몸을 입고 있는 것이다.'

지함은 자신이 기적인 상태에서 점점 속세의 인간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았다.

몸을 입게 된 징후는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었다.

우선 기(氣)적인 물체들이 잡히지 않게 된 것이다.

기적인 물체는 기적인 차원에서만 손에 잡히고 만져지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기적인 차원을 떠난 지금은 더 이상 잡히지 않은 것이다.

 

별도의 과정을 거친 후에는 잡힐 수 있으나 지함은 아직 그 과정을 겪지 않은 것이다.

현재의 상태에서는 기적인 단계인 선계와 물적인 단계인 속계의 차이가

너무도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어 넘겨 양계(兩界)를 모두 아우를 수 있어야 참 선인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선계에서만 존재하는 선인이 있으나 속계에 내려와 속에서 배워야 할 일을

전부 겪어 넘기고 나서 다시 선계로 복귀할 실력을 인정받고 속계에서 있을 때에는

그 이상의 힘이 나올 수 있기도 하였다.

 

'선인'

 

 

 

'1. 선계수련 교과서 > 소설 선(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仙 (113)  (0) 2008.05.26
소설 仙 (112)  (0) 2008.05.26
소설 仙 (110)  (0) 2008.05.24
소설 仙 (109)  (0) 2008.05.23
소설 仙 (108)  (0) 2008.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