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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황진이,선악과를 말하다

부친은 선비, 황 이 黃伊

by 날숨 한호흡 2010. 6. 22.

 

 

 

"저는 원래 진眞이라고 불렀으나 나중에 스스로 아버지의 이름 끝자를 한 자 더 붙여 진이眞伊라고 불렀습니다."

 

 

출생은 언제 하였었는지요?

16세기 초반이예요.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6월 초순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연도는 언제인지요?

아마 1511년인 것 같습니다.

 

정확한가요?

맞을 것입니다.

 

본명은 무엇인지요?

'진이'입니다.

 

부친은 누구였는지요?

별로 대단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시골의 선비로서 조용한 가운데 나름의 학식을 갖춘 분입니다.

거의 말이 없으셨으나 마음속으로는 사랑이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저를 퍽 아껴 주셨으나 소실의 딸이므로 내놓고 귀여해주시지는 못하였습니다.

성함은 황 이黃伊라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원래 진眞이라고 불렀으나 나중에 제 스스로 아버지의 이름 끝 자를 한 자 더 붙여 진이眞伊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기도 하였지요.

 

그랬었군요.

어머니는 누구였는지요?

모친께서는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이 어려워 황씨 댁에 소실로 들어온 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드러내 놓고 정을 표현하는 분이 아니므로 당시의 소실들처럼 집안일도 하면서 저를 보는 낙으로 살아가셨던 분입니다.

 

어머니가 진현금이라는 맹인 악사였고, 다리 위에서 황진사와 처음 만나 황 선인을 잉태했다는 설은 왜 나온 것인지요?

어머님꼐서 악기를 잘 다루시기는 하였으나 맹인은 아니셨고 아주 조용하신 분이었습니다.

맹인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어머니께서 주로 후원에서 생활하셨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거문고 소리를 듣기는 하였으나 어머님을 뵌 적이 별로 없다는 것에 기인한 것 아닌가 합니다.

당시에는 거문고가 선계의 악기임을 몰랐으며 모친께서는 저에게 악기 연주법을 알려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 선율은 그대로 귀에 남아 있어서 모친께서 꽤 연주를 잘 하셨던 분임을 알 수 있었지요.

사람들이 말을 만들어내기를 잘하니까 저와 저의 주변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관심을 끌도록 만들어지거나 어른들께서 농으로 하신 말씀이 진담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지요.

저에 관해서는 그런 부분이 상당히 많더군요.

하지만 소설도 쓰는데 그러한 것은 대개의 경우 크게 도리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저도 그냥 재미로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은 무엇이었는지요?

선비로서 초시에 급제하기는 하였으나 벼슬을 한 적은 없고, 농토가 있어 일꾼들이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습니다.

부유하지 않고 그런대로 살았습니다.

음주가무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주 조용한 편이셨습니다.

 

형제들은 어떠했는지요?

본 부인께서 아들이 두 명 있었고 그리고는 저 이렇게 셋이었는데 오빠들과는 별로 대화가 없이 자랐으므로 그저 있었다는 정도 외엔 별 기억이 없습니다.

 

성장과정은 어떠했는지요?

집에서 모친과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기생이 되려고 나가기 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대로 평범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모친과는 언제까지 있었는지요?

어머니는 15세 경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로는 집에 있기가 불편하여 어디로든 나가야 할 형편이었으므로 방편을 생각하던 차 기생이 된 것입니다.

저로서는 그때까지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독서를 통하여 나름대로 알고 있었으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생각이 있던 차 모친께서 향천하셨으므로 저의 길을 간 것이지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황 선인을 보필했던 여성은 누구였지요?

자랄 때는 전속 몸종이 없었고 기생이 되고 나서 서너 명의 몸종이 있었으나 오래 두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몸종은 신월이라고 하였는데 6년 정도 데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한 곳에서 머무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기생에게 몸종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스스로 삼가기도 하였습니다.

주로 제 몸종들은 남정네들이 붙여주었던 것이지요.

그들이 제 심부름을 하기는 하였으나 마음을 깊이 줄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고 그저 할 일이나 하였을 뿐이지요.

기생어미는 제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거의 스스로 컸으며, 남의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기기 전에 남정네들이 먼저 저를 알아보았으므로 기생어미가 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이지요.

 

 

*  황진이의 출생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담긴 자료가 없고, 여러 책에서 신비로운 설화처럼 전하고 있다. 이덕형(1566~1645)의 <송도기이>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 황진이의 어머니는 현금(玄琴)이었는데 자색이 매우 고왔다. 나이 18세에 병부교아래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다리 위에 한 사람이 있으니 용모가 단아하며 의관이 화려했다. 현금을 내려다보며 미소도 띄우고 손으로 가리키기도 하여 현금의 마음이 동하였는데, 문득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해질 무렵에 빨래하는 여인들이 모두 간 후에 다시 나타나서는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다리 아래로 내려와 물을 청하기에 떠주었다. 반쯤 마시다가 돌려주면서 "그대도 마셔보라" 하기에 현금이 받아서 마시니, 물이 아니고 술이었다. 그리하여 합환주가 되어 둘이서 깊은 인연을 맺으니 이로 말미암아 탄생한 것이 진이였다.

 

* 약간 추가된 내용이 김이제(1767~1847)의 <중경지>에 나온다.

 

- 그 뒤 소년은 이름도 안 밝히고 가버렸다. 생각건대 선인이라고 여겨졌다. 과연 임신이 되어 진이를 낳았는데, 해산 때에 기이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차 사흘 동안 걷히지 않았으니, 즉 이는 선녀라.... 어찌 황(黃)이라는 성이 있겠는가?

 

* 김택영(1850~1927)의 <숭양기구전>에는 '황진사의 서녀'라는 언급이 있다.

 

- 이는 황진사의 서녀이니 진사의 첩이 현금이었다. 그가 병부교 아래에서 물을 마셨는데 감응하여 임신이 되어 진이를 낳았다. 방 안에 이상한 향기가 사흘간을 머물렀다.

 

* 허균(1569~1618)의 <성웅지소록>에는 '맹인의 딸' 이라는 언급이 있다.

 

 

 

[ 제1장 황진이, 삶을 말하다, 7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