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선배 선인들이 수련하시던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숲속으로 내려가자 점차 부분적으로 안개가 걷히며, 30~40여 미터 아래로 조그마한 집이 한 채 보였습니다. 공기는 더없이 맑았습니다. 태초의 공기가 거의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뒤에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초가집이 있었습니다. 방은 1~2개 정도 있는 것으로 보였으며, 집의 오른쪽, 별채로 된 외양간에는 황소가 한 마리 매여 있었습니다. 집의 왼편은 부엌이고, 오른편의 방 안에는 별로 가재 도구가 없는 아주 단촐한 살림살이가 있었습니다.
방 앞에 자그마한 툇마루가 있고 그 방의 오른쪽에는 각종 농기구를 넣어 두는 헛간이 있었습니다. 집 앞 주변에 이 집 식구들 이외에 나무꾼 정도나 다닐 만한 작은 오솔길이 산 위를 향해 나 있었으며, 약 20여 미터 앞에는 물이 많이 흐를 때는 빨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자그마한 도랑물이 흘렀습니다.
아래쪽으로 있는 논에는 벼가 자라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절기상으로는 거의 여름이 다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음에도 산중의 아침이므로 기온이 찬 것 같았습니다. 바라보고 있는 사이 점차 안개가 걷혀 가고 있었습니다.
산 아래쪽을 보니 5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집 이 한 채 있었으며, 그 밑으로는 아주 멀리 밥 짓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아침인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외딴 집 앞의 우물에서 한 처녀가 물을 긷고 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노인이 한 분 누워 계셨습니다. 노인께서는 몸이 많이 편찮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풍기는 기운으로 보면 범상했던 분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한몫을 단단히 했을 만큼 장대한 기골이었으며, 수련에 관하여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직접 체험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선인들의 행동은 속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선인들이 보여주려 할 때만 보이며, 저절로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원칙인바, 그 이유는 존재하고 있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선인들의 세계는 모든 시간대를 총괄하고 있으나 속인들은 자신이 속한 시간대에만 존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선인들이 속에 내려와 있을 경우 속인의 시간대에서 약간 앞서거나 약간 뒤에 따라가게 되므로 속인의 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으나, 선인은 시간대에 무관하게 존재하므로 인간의 일에 대하여 모두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작은 초가집에서 멀지 않은 산등성이에는 이 집의 부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분의 묘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묘지의 풍경으로 보아 십수 년은 지난 것 같아 보였으며, 부녀만 생활한 지 이미 수년이 경과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가끔 그 집 앞으로 사냥꾼들이나 나무꾼들이 지나가곤 했으나, 노인이 엄한 분이므로 이 처녀와 어떠한 농담을 한다거나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처녀도 나이가 열일곱으로 모친께서 별세하시고 난 후 부친과 함께 생활하면서 결혼이란 것에 대하여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마을 아래로 내려가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부친의 엄한 교육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하여 말로만 듣고 있었을 뿐,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 후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집 앞을 오가는 사람들이 처녀에 대하여 눈길을 주는 경우가 있었으나, 부친의 엄한 교육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하여 말로만 듣고 있었을 뿐,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 후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집 앞을 오가는 사람들이 처녀에 대하여 눈길을 주는 경우가 있었으나, 부친의 엄한 눈초리 앞에 아무 말 못하고 그냥 지나가곤 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가고 있었음에도 이것이 어떠한 연유로 생기는 것인지 가르쳐 주는 이가 없어 그저 느냥 그런가보다 할 뿐이었습니다.
이 처녀의 부친은 어떠한 일에도 능력을 발휘하던 분으로서, 동네에서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던 분이었으나 부인을 먼저 보내고 난 지금은 모든 일에서 은퇴하여 조용히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동네에서 가장 장사(기운이 센 사람)로서 농사에도 으뜸이었으며, 전쟁에 나가서는 누구보다도 월등한 기량을 선보였으나, 관직에 나가는 것만큼은 한사코 사양하였던 그였습니다.
사람이 좋고, 서글서글하며, 모든 면에서 인품이나 실력도 상당하였고, 누구에게나 친절하였습니다. 주변에서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는 항상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그것을 누구에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동네에서 이웃 마을 청년들이 이 처녀에게 길가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을 이 청년이 나서서 물리치고 구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처녀의 부친이 이 이야기를 듣고 감사 인사를 하려고 청년을 한번 불렀던 바, 청년의 인품이 너무 훌륭하므로 그대로 자신의 딸을 억지로 떠맡기듯 결혼을 시킨 것이 바로 이 처녀의 모친이었습니다.
[ 한국의 선인들 1권, 23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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