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백일 금촉을 하고 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자신이 그전에는 이해 못할 일이 없고 다 용서가 되어서
굉장히 편안한 상태로 지냈는데,
금촉에 들어가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답니다.
가슴 속 응어리가 그대로 있더라는 것이지요.
또 다른 한 분은 백일 금촉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자기 생애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가졌답니다.
'이렇게 편할 수가 있는가' 싶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찌나 생각이 많이 나는지 자기 뇌를 한번 해부해보고 싶을 정도였답니다.
온갖 잡생각이 다 나니까 내가 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몸을 가두면 생각이나 감정이 다 나오게 마련입니다.
몸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면 생각이나 감정이 숨어서 드러나지 않는데,
몸을 가둬놓으면 엄청나게 드러나서 평상시 하지 않았던 생각들까지
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금촉을 하다 보면 그게 아님을 알게 됩니다.
견성도 마찬가지여서 견성을 하면 다 깨달은 것 같은데,
중각中覺, 종각終覺으로 가다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깨달음이란 오늘 깨달았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지고 또 다져야 하는 것입니다.
수련하시는 분들의 스케줄은 비슷한 상황을 자꾸 겪도록 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인 것 같은데, 다릅니다.
계속 되풀이 되는 것 같은데 올라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다져지는 것입니다.
진화의 과정은 이렇게 달팽이가 나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선인들이 지상에 내려와서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이유는
한번 극복했다고 해서 뿌리 뽑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뿌리 뽑힌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면 또 살아 있습니다.
완전히 뿌리 뽑는다는 것이 참 지난한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것도 다 된 줄 알고
책을 덮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당한 경지까지 갔다"고 말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유야무야 되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되풀이해서 다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한번 시험 봐서 합격했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그걸 일컬어 '선력仙歷'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렇게 쌓이고 다져져야
비로소 우주를 위해 일할 만한 사람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상대방은 하나의 도구일뿐이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등산을 할 때 산과 싸우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산은 도구일 뿐이며 자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수련이란 그런 가운데 자신에 대한 믿음, 존경, 사랑 같은 것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 7장 우주의 사랑으로 가는 길, 30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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