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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선계이야기2

의선 허준과의 만남 (38)

by 날숨 한호흡 2008. 7. 27.

 

 

= 허준 선인에 대한 한 논문을 보니 "허징"이라는 배다른 동생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은 "정"입니다.

"허정"이었으나 출생 후 얼마 살지 못하고 4년 10개월만에 돌아갔으므로 공식적인 기록은

없을 것입니다.

그 외에 배다른 동생은 기억에 없습니다.

 

인간계에서는 중요한 것이 선계에서는 별로 중요치 않은 경우도 있으며

당시의 다소 복잡한 계보에도 불구하고 저의 집안은 조용한 편이었으며

따라서 시끄러운 사대부 집안에 비하여 비교적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 모친의 성씨를 알려주시지요.


- 박씨였습니다.

박가 성에 "지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인으로서는 상당한 지식과 심성을 갖추고 계셨던 분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별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실력 면에서 고을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모친의 영향으로 형제들 모두 나름대로 분야를 개척하여 공부하고 있었으며

어려운 형편임에도 책을 두루 구해주시므로 인하여

당시에는 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서적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이 후일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친은 항상 행실이 단정하고, 타에 모범이 되셨으며, 조용조용한 가운데 하실 말씀은

다 하시는 분으로서 주변의 모든 분들이 좋아하시면서도 어려워하셨던 분이셨습니다.

 

= 부친의 성함은?

 

- 함자는 "허면"으로서 성품이 온화하시고 학식이 깊어서 동네에서 여러 어른들과 함께

일을 논하실 때면 신분을 막론하고 양반들도 어려워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중인임에도 양반들도 어려워할 정도의 지식 체계를 갖추고 계심으로

감히 타인이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갖추고 계셨습니다.

부친의 영향은 제가 속세에 있는 동안 내내 저희 형제들에게 미치고 있었으며,

부친의 영향은 모든 형제들이 자신의 길을 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바 있습니다.

 

= 고향은 어디셨는지요?

 

- 경남의 "의령"이었습니다.

소년기의 얼마간을 "합천"에서 생활하기도 하였으나 본거지는 "의령"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커서 "진주"에 잠시 거주하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모든 것은

부친이 관직에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주로 현재의 경남 지방에서 거주하였으며 나중에는 "서울"에서 생활하였습니다.

 

= 당시 어의(御醫) "양예수"가 스승과 같은 위치였는지요?

 

- 양 선생님께서는 당대에 가장 엄한 스승으로서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아마도 조선조의 모든 의인(醫人)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분 중의 한 분이었을 것입니다.

이 분은 제게 스승으로서보다는 상사에 가까웠으나 그러한 면과 동시에 스승으로서의

많은 영향을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 친구들은 누구였는지요?

 

- 친구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제 성격상 많은 사람들과 깊은 정을 나누는 것이 맞지 않을뿐더러 저의 길을 가기에도 바빴으므로

반드시 필요한 사람 이외에는 사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주로 의인들이었으며, 이러한 의인들 이외에는 별로 사귀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 나서부터는 모든 것이 보였으므로 이들로부터 구할 것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제게 구하려 하였으나 이들에게 주어도 소용될 것이 별로 없었으므로

그대로 생활하였던 것입니다.

다만 지나는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한 적은 없으며 모든 이에게 성실한 진료를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