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제일 힘든 게 용서입니다. 용서하기가 참 힘듭니다.
기독교는 사랑입니다. 그저 사랑을 베풀면 됩니다.
데레사 수녀와 같은 분이 아무 가진 것 없이 가서 불우이웃을 돕고 몸과 마음을 다 해서 베풀듯이,
사랑을 베풀면 되니까 어떻게 보면 쉽습니다.
불교는 자비입니다.
자비란 사랑과 다릅니다. 한없이 자애롭지만 맹목적인 자애로움은 아닙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비판하고 시시비비가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면 인과응보가 돌아옵니다.
우주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용서, 즉 '무심'입니다.
무심이란 가장 용서하는 차원으로, '용서한다, 안 한다'의 차원이 아니라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했는지 안 했는지도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이 무심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복수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복수라는 건 그래도 뭔가 액션이 있고 힘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진짜 혼내주는 방법은 복수가 아니라 무심입니다.
관심이 없는 것만큼 철저한 복수가 없습니다.
[무심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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