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
장편, 중편, 단편이 있는데 장편은 출생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다 다루는 거예요.
그리고 중편은 어떤 시점, 예를 들어 대학에 들어가는 시점에서부터 어떤 시점까지 딱 자르는 것입니다.
단편은 더 자르는 거예요.
단편이 알차다는 것은 하이라이트만 딱 자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을 대표하는 명장면만 뽑아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장편을 쓰고 싶으시면 장편을 쓰시고 하이라이트만 뽑아서 하시려면 하십시오.
'내 인생은 지금부터다. 내 인생의 막은 지금부터 열렸다.'
그렇게 하실분들은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나는 1999년 9월 OO일에 새로 태어났다.' 이렇게 시작하시면 됩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으면 좀더 준비했다가 하셔도 되는데 그 대신 그 때부터의 시간은
전혀 낭비 없이 사셔야 합니다.
이 수련에 들어오신 분들은 하루도 낭비가 없어야 해요.
지나고 보면 너무 아깝습니다.
시간 낭비한 것이 너무 많아서 저도 막 가슴을 치고 울었어요.
수련하기 전부터 알차게 살아왔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쓸데없능 일에
시간, 에너지 낭비 많이했고 감정의 소비가 너무 많았어요.
쓸데없이 머리를 너무 많이 썼고 하여튼 낭비를 너무 많이 했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선계에 가고 싶다」에 보면 선생님과의 문답이 나오죠.
제가 자위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인데
'제 인생이 처음부터 수련을 위한 과정이었습니까?' 라고 했더니
'큰 줄기는 그렇다고 볼 수 있으나 낭비한 시간도 많이 있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몰라서 그랬고 또 괴로워서도 그랬고 몸이 허약해서도 그랬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이제는 살아봐야 저도 내일 모레가 오십이니 기껏해야 이십 년, 삼십 년 남았잖아요.
지구에서 한 생을 보내기 위해 벼르고 별러서 왔는데 이렇게 간다는 것이 아쉽죠.
지금부터는 아쉬울 것이 없어요.
이 공부하고 나서는 하루하루를 저도 아주 알차게 보냅니다.
작가는 24시간 근무하는 사람들이어서 내년쯤 써야 하는 작품 구상에 벌써 들어갔고,
수선재를 위해 계속 마음을 많이 쓰고, 맑음과 좋은 파장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제가 너무 낭비를 많이 했더라고요.
그 점을 아주 후회했죠.
선생님, 에너지를 낭비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아쉬움이 남는다는 뜻입니까?
제가 말씀드린 것은 엄밀히 말하면 아쉬움이 아니라
제가 수련하기 전에 에너지 낭비를 많이 해서 수련을 시작할 무렵에는 완전히 지친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너무 많이 소진해서 아주 허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몸을 바로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거든요.
그렇지 않았으면 상당히 좋은 상태, 기운이 장한 상태로 수련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들 수퍼우면을 지향했는지 직장 다니는 사람이 살림 소홀히 하는 것은
절대 용서 못하는 분위기였어요.
게다가 직장 다니면서 늦게 대학원 다녔지, 아주 피곤했어요.
전에 정(精)을 많이 소모하신 분들이 나중에 아주 후회를 하십니다.
정에너지는 72근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것을 다 쓰면 죽습니다.
또 죽을 때 시체에서 여섯 내지 일곱 근은 가지고 갑니다.
예를 들어 72근 중에 50근을 소모했다면 20여 근을 가지고 수련을 해 내야 하는 거예요.
수련이라는 것이 말할 수가 없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서
72근 에너지를 다 가지고 있다가 가동을 해도 갈까 말까 하거든요.
그런데 다 소진된 상태에서 천기를 받은들 천기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에너지를 자꾸 활성화시켜서 해야 되는 거예요.
수련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자체 내에 동력화시킬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 가슴을 치고 후회한들 할 수 없는 거죠.
기운이 딸려서 더 못 갑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많이 보존을 하시고 허비하는 일은 없도록 하십시오.
항상 '지금'이 제일 좋은 기회에요.
후회를 해 본들 소용없고 '해야겠다' 라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시작이거든요.
그 때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오늘도 안 하고 더 미루면 또 늦는 거죠.
'철야 수련을 할까 말까? 집에 가서 더 생각해 봐야겠다.' 이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후회를 많이 해요.
수련의 기회가 닿았는데도 눈에 티가 하나 들어간 것같이 보이지가 않거든요.
눈에 조그만 티라도 하나 들어가면 눈 전체가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기회를 놓치곤 하는데 나중에 굉장히 통탄하죠.
그런데 그 때는 왜 안보였는지 모릅니다.
왜 안 보이느냐?
눈에 티가 들어갔으니까 안 보이는 거죠.
옥석을 구분하는 눈만 있어도 반은 가는 거예요.
지혜의 눈이 열린다는 가죠.
'이거다!" 하고 붙들면 다시 재보고 망설일 것 없이 그냥 가야 합니다.
젊은 분들은 참 너무 축복이죠.
가다가 얼마나 많이 엎어질지, 또 엎어지면 혼자 일어나지 못하고
옆에서 세워 줘야 일어날지 모르지만 아무튼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 선계이야기1-단전호흡, 수선재, 2000년 3월 출간, 16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