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황진이
역사인물 가운데 가장 많이 회자되고 사랑받는 여성, 황진이黃眞伊.
16세기 조선 중종 때 기생으로 살았던 그녀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상사병으로 죽은 총각의 상여에 옷을 얹어 준 이후 스스로 기생이 된 그녀는
학식과 예술성을 두루 갖추어 견줄 자 없었으며 박연폭포, 화담 서경덕과 함께 송도삼절로 이름을 날렸다.
30년 면벽 중이던 당대의 고승 지족 선사를 단번에 파계의 길로 이끌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타고난 절색에 시재詩才 또한 뛰어나 종실 벽계수, 판서 소세양, 선전관 이사종,
재상의 아들 이생 등 당대의 명사들과 대등하게 교류하였으며
말년에 모든 것을 버리고 금강산을 비롯해 산천을 떠돌며 만행萬行하는 등
유명세를 떨치며 비범한 족적을 남겼다.
이덕형의 「송도기이松都奇異」에는 천재 시인이자 절창이며 아리따운 외모를 지닌 선녀라고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황진이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리 문학사상 가장 빼어난 시와 숱한 일화를 남긴 그녀.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
선인仙人 황진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선비들의 호흡수련은 인간계와 선계仙界를 잇는 통로로서
깊은 호흡에 들게 되면 선계의 참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선계란 깨달은 이들이 거하는 공간으로 우주를 다스리는 곳이며
선인仙人이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이를 일컫는 명칭이다.
황진이는 선계에서 공부차 지상에 내려온 선인으로서 깨달음을 완성하기 위해
지상에서의 삶을 선택하였다.
그녀가 기생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파장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껴 보고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며 그 생을 통해 천민에서 수도승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성스러움과 속됨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알 수 있었다.
당대 고승이었던 지족 선사의 파계와 화담 서경덕과의 만남은 세간에서 일컫는 통속적 차원의 사랑이 아닌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분들과의 교류를 통해 각자 공부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만남이었다.
기생의 옷을 입었든, 승복을 입었든, 하늘의 길을 알고자 하였던 것이다.
기생으로 한 생을 살았던 황진이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공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후 선계로 복계復界하였다.
그렇다면 왜 지금, 황진이인가?
황진이의 시조는 워낙 유명하지만 사실상 한시 8수, 시조 6수에 불과하다.
이 책에 실린 시는 과거의 시와 시조를 어딘가에 찾아낸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황진이>에서 밝혔듯이
파장으로 내려온 선시仙詩를 제자들이 받아서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시를 받아 적으면서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왜 이 시기에 황진이를 만나게 되었으며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분께서 시와 글을 통해 현 시점에 주시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이에 관해 황진이 선인께서 주신 대답은 전문을 인용해본다.
나의 삶 자체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대중성을 갖춘 한 편의 드라마이자 노래였다.
그 당시 기녀는 지금으로 치자면 연예인이라 할 수 있는 직업이었으며
인류가 바라는 가장 보편적인 갈구이자 동경인 '사랑'이라는 코드를 가지고
삶속에서 표현하기에 적절하였다.
후대에 나의 삶과 사랑이 그 자체로 드라마, 영화화 되고 빼어난 문학작품으로 시조가 평가받는 이유가
그것이라 생각되는구나.
언뜻 보면 지금의 한류와 다를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한민족에 흐르는 정서,
그 정서에 담긴 기운과 맥은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토대가 달랐을 뿐
인간의 정서와 감정에 깊이 뿌리 내린 측면에서 나의 삶은 한류의 시작이었다.
한류의 정서는 어머니 같은 그리움이다.
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듯이 태생적인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마법과 같은 파장이 숨어 있단다.
인간의 마음은 다른 듯 보여도 뿌리는 같아서 그 뿌리를 찾아주는 정서에 닿아있기에
한류가 이처럼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그리움이라는 정서, 뿌리를 찾고자 하는 근원에 대한 끌림,
어머니의 품과 같은 회귀본능을 지니고 있기에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로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에 대한 향수를 그 당시 시대에 맞게 내가 지닌 문재와 기예,
독특한 행보로 표현했다고 하면 가할까.
사랑이라는 주제로 많은 일화들이 생겨났고 사랑에 관한 시를 남긴 것이
나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구나.
황진이의 삶과 사랑 자체가 지금까지도 드라마, 노래,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자리 매김 되었던 이유는
현재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한류의 시작이었기 때문이었으며
이 시점에 시와 글을 파장으로 내려준 이유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시와 글속에 담긴 파장을 통해 잊혀졌던 정서인 그리움과 사랑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선인 황진이는 지금도 선계에서 이와 관련하여 노랫말과 글, 인간이 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력으로
합당한 이들에게 파장으로 전해주고 있으며 그 안에 선仙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연구하는 중이라고 한다.
더 깊고 넓게 확대된 사랑인 선仙은 하늘과 자연과 인간이 사랑하고 하나 되는 과정이라며....
사랑의 별에서 사랑의 존재로 났으니 너희 사랑을 발현하여 사랑으로 하나되기를 바란다.
노래를 통해 하늘과 자연과 인간과 하나 되고 시와 글을 통해 하늘을 알고 자연을 알고
인간을 알아가기를 바란단다.
모든 것이 사랑으로 가능한 일이니 사랑으로 거듭나 새로운 사랑의 시대를 맞이 하거라.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퇴색되어 누구나가 사랑앓이로 힘겨워하는 시기에 인간이 본래 지녔던
그리움의 정서와 사랑을 회복하기를 바라신다는 말씀은
사랑의 대가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 시대에 선인 황진이를 스승으로 모시고 주옥같은 시를 읊을 수 있음을 무한한 행운으로 여긴다.
[너는 사랑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리움이라 말한다 (황진이, 장미리외, 수선재, 2012년 9월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