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관한 사항을 끊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된다는 분이 계신데
희노애락애오욕, 즉 느낌에 대해서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느낌이 오면 계속 깊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느낌 자체를 잊어버리는 거예요.
갑자기 누가 전화해서 굉장히 기쁜 소식을 알려줘도 그 기쁨을 오래 간직하지 않고 이내 잊어 버립니다.
슬픔도 마찬가지로 느낌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에서 반응이 오죠.
반응조차 오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 반응을 금방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무심의 상태, 비어 있는 상태로 있는 것이 지감하는 상태입니다.
'느낌을 멈춘다,' '감정이입이 안된다.' '감정의 흔들림이 없다.'
다 같은 말입니다.
전에 제가 수련 시작할 당시에 알던 분 중에 한의원 원장이 있었는데
환자가 많아서 하루 종일 굉장히 바빴어요.
그런데 퇴근할 때 만나보면 항상 쌩쌩한 거예요.
그래서 삼사백 명씩 환자를 보고도 어떻게 그렇게 쌩쌩하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무심으로 한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환자를 볼 때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이인지, 어른인지, 돈이 많은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얼굴 생김은 어떤지 등 잡다한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환자로만 본다는 거였어요.
일할 때 피곤해지는 이유는 항상 감정을 섞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거래처 사람하고 마찰이 생겨서 일이 잘 안되고 상사로부터 꾸지람을 들으면
화도 나고 부당하게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그럴 때도 그냥 무심으로 드십시오.
거기에 같이 감정 섞어 가며 얘기하다 보면 더 지치고 피곤해질 뿐이 아니라
때로는 단전을 막 놓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상대방이 얘기하는 것을 들어주고,
그럴 수도 있다고 얘기하고 또 이 쪽 입장도 얘기하면서 타협점을 찾으면 화가 안 납니다.
사실 일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은데 옆 사람에게 괜히 신경 쓰고 일에 감정을 이입시키기 때문에
지치고 피곤한 것입니다.
사회 생활은 하되 느낌을 갖지 않는 자세, 행여 가져도 이내 잊어버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만약 옆 사람이 계속 볼펜으로 딱딱 소리를 낸다고 해보세요.
그런 것이 한번 걸리기 시작하면 계속 불편해집니다.
그럴 때는 그 상태를 그냥 잊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는데 그런 것이 지감입니다.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선계이야기-지감, 금촉, 수선재, 2000년 3월 출간, 8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