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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성과 영성을 위한 글/인연 이야기

시 반구절과 바꾼 목숨

by 날숨 한호흡 2010. 5. 27.

 

 

 

 

 

 

 

 

한 수행자가 히말라야에서 홀로 고행하면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기 전이었으므로 부처님의 이름도, 대승경전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때 제석천(帝釋天, 불교를 수호하는 천신)은 그 수행자가 과연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기 위해 나찰(羅刹,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악독한 귀신)의 몸으로 변신하여 히말라야로 내려왔다.

수행자가 사는 근처에 서서 과거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의 앞 구절을 외쳤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덧없으니 그것은 곧 나고 죽는 법이라네."

 

그는 이 시를 듣자 마음 속으로 한없는 기쁨을 느꼈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험상궂게 생긴 나찰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저처럼 추악하고 무서운 얼굴을 가진 것이 어떻게 그런 시를 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불 속에서 연꽃이 피고 뜨거운 햇빛 속에서 찬물이 흘러 나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또 알 수 없다.

혹시나 저것이 과거세에 부처님을 뵙고 그 시를 들었을는지도.'

 

그는 나찰에게 가서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의 앞 구절을 들었습니까? 당신은 어디서 그 여의주 보배의 반쪽을 얻었습니까? 나는 그것을 듣고 마치 연꽃 봉오리가 활짝 피듯이 내 마음이 열렸습니다."

 

"나는 그런 것은 모르오. 여러 날 굶은 끝에 허기가 져서 아마 헛소리 했나 보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당신이 만약 그 시의 뒷 구절을 마저 내게 일러 주신다면 나는 평생을 두고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물질의 보시는 사라질 때가 있지만, 법의 보시는 사라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지혜는 있어도 자비심이 없구료.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지 남의 사정은 모르고 있소. 나는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오."

 

수행자는 나찰에게 물었다.

 

"당신은 대체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나찰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놀라지 마시오.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살덩이이고 마시는 것은 사람의 따뜻한 피요. 그러나 그것을 구하지 못해 나는 몹시 괴로워하고 있소."

 

"그럼, 당신은 내게 그 나머지 시를 들려 주십시오. 나는 그것을 다듣고 내 몸뚱이를 송두리째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 덧없는 몸을 버려 영원한 몸과 바꾸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누가 당신의 말을 믿겠소. 겨우 반쪽의 시를 듣기 위해 그 소중한 몸을 버리겠다니."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질그릇을 주고 칠보로 된 그릇을 얻듯이, 나도 이 덧없는 몸을 버려 금강석과 같은 굳센 몸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시방 삼세의 부처님께서 그것을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똑똑히 들으시오. 나머지 반을 마저 말하겠소."

 

마침내 나찰은 시의  후반부를 읊었다.

 

"생사의 갈등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것이 열반의 기쁨이어라."

 

 

수행자는 이 구절을 듣고 더욱 환희심이 솟았다. 시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음미한 뒤에 그 시를 후세에까지 전하기 위해 벼랑과 나무와 돌에 새겼다.

그리고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아래로 뛰어 내리려 하였다.

그때 나무의 신(樹神)이 그에게 물었다.

 

"그 시에는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이 시는 과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시를 들으려고 몸을 버리는 것은 내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상의 인색한 사람들에게 내 몸을 버리는 이 광경을 보여 주고 싶다. 조그만 보시로써 마음이 교만해진 사람들에게 내가 반 구절의 시를 얻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보여 주고 싶구나.'

 

마침내 그는 몸을 날려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그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나찰은 곧 제석천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공중에서 그를 받아 땅에 내려 놓았다.

이때 여러 천신들이 운집하여 그의 발에 예배하면서 그토록 지극한 구도의 정신과 서원을 찬탄하였다.

 

<대열반경 14>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 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