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자비심이 지극한 왕이 있었다.
그는 백성 대하기를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하였고 신앙심 또한 지극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기어코 불도를 이루리라는 큰 서원을 세우고 있었다.
어느 날 비둘기 한 마리가 매에 쫓겨 비명을 지르면서 그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바로 그때 비둘기를 쫓던 매가 나뭇가지에 앉아 왕에게 발했다.
"그 비둘기를 내게 돌려 주시오. 그것은 내 저녁거리입니다."
왕은 단호히 거절했다.
"비둘기를 네게 돌려 줄 수 없다. 나는 불도를 이루려고 서원을 세울 때 모든 중생을 다 구호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럼, 그 모든 중생 속에 나는 들지 않는단 말인가요? 나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고, 더구나 내 먹이를 뺴았겠다는 것입니까?"
이 말을 듣고 왕은 난처해졌다. 매의 먹이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 보려고 제의했다.
"나를 의지해 내 품에 찾아든 비둘기만은 돌려 줄 수 없다. 그 대신 너는 어떤 것을 먹고 싶으냐?"
매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살아있는 날고기가 아니면 먹지 않습니다."
왕은 속으로 생각했다.
'살아 있는 날고기라면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는 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나를 구제하기 위해 다른 목숨을 죽게 할 수는 없다. 내 몸은 오래지 않아 죽고 말 것이니 차라리 이 몸을 주도록 하자.'
왕은 선뜻 다리의 살을 베어 매에게 주었다.
그러나 매는 비둘기와 똑같은 무게의 살덩이를 요구했다.
왕은 저울을 가져다가 베어낸 살덩이와 비둘기를 달아보았다.
비둘기의 몸이 훨씬 무거웠다.
왕은 한쪽 다리의 살마저 베어 두 덩이를 합쳐 달아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가벼웠다.
그리하여 양쪽 발꿈치, 양쪽 엉덩이, 양쪽 가슴의 살을 베어내 달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베어낸 살이 비둘기의 무게보다 가볍기만 했다.
마침내 왕은 매를 원망하거나 자신이 한 일에 조금도 후회하는 일 없이 중생의 고통만을 생각하였다.
'모든 중생은 괴로움의 바다에 빠져 있다. 나는 그들을 어서 건져 내야 한다. 이 고통도 중생들이 받는 지옥의 고통에 비하면 그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왕은 다시 저울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왕은 다시 맹세하여 말했다.
"나는 살을 베어내고 피를 흘려도 괴로워하거나 뉘우치지 않고 일심으로 불도를 구하였다. 내 이 말이 진실이라면 내 몸은 본래대로 회복되리라."
이와 같이 맹세하자 왕의 몸은 순식간에 본래대로 회복되었다.
<대지도론 4>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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