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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仙 (005)

by 날숨 한호흡 2008. 1. 7.

 

 

선인의 파장을 발산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선계와의 대화 역시 가능할 것이었다.

선계와의 대화가 가능하다면 선계의 지식이 상당 부분 지상에 내려와 있을 것이었다.

미르는 지구에 온 이후 자신의 감각이 상당히 무뎌졌음을 깨달았다.

우주에 있을 때는 이러한 경우 즉시 어떠한 것이든 정보가 입수되었을 것이지만

지상에서는 찾아야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것이 지구의 방식인 것 같았다.

미르는 지구의 모든 것을 샅샅이 알아보고 어느 생물체이든 선택하여 수련을 하고 싶었으므로

더욱 알아보기로 하였다.

 

대륙들도 여러 개가 있었으며, 바다도 정말 넓은 것이 많이 있었다.

미르는 자신이 지구의 기운을 타고 이동하다 보니 이렇게 움직임이 늦을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우주에서라면 어떠한 거리라도 신속히 이동이 가능하였다.

감히 시간을 지체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자신이 원하던 시간대를 놓치는 일이 빈번하였다.

지구의 시간표는 철저히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므로 우주와는 시간대가 다른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지구라는 환경이 선인이라고 해서 그냥 놓아두는 법이 없었다.

철저히 지구에서는 지구의 방식으로 생활하여야 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이상한 기운이었다.

이러한 기운은 전에 다루성에서 한번 느껴본 적이 있었다.

다루성은 파랄 은하계 제 63은하의 주성(主星: 해당 은하에서 가장 진보된 생물체가 사는 별,

따라서 가장 환경이 좋음)이다.

그 별에 잠시 수련 차 갔을 때 이처럼 통제가 잘 되지 않는 기운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그 후에는 지구가 처음이었다.

지구는 정말 배울 것이 많이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다양했다.

아주  쉬워서 이러한 것들도 있구나 싶은 것이 있는가 하면,

우주의 개념으로 풀면 풀릴 수 있어도 인간의 개념으로 풀면 아직 풀리지 않을 만큼

어려운 부분이 공존하고 있었다.

미르 자신도 때로는 원리를 찾아내는데 어려울 정도의 것들도 있었다.

인간들은 이러한 것을 대함에 있어 자신의 역량을 동원하여 넘기고 있었다.

넘어가면 극복하는 것이고 넘어가지 못하면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구의 기운에 대한 파악이 거의 끝나갈 무렵

미르는 자신의 수련에 적합한 생명체를 찾아보기고 하였다.

가급적 영적으로 진화된 생물체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식물의 경우 자체에 의사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였고

또 그것들이 자동적으로 운영되도록 설정되어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이동이 불가한 것이 가장 큰 결점이었다.

하지만 동물의 경우 자신의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비율이 높고

이동을 통하여 보다 적극적인 환경 설정이 가능하였다.

이중에서도 가급적 파장이 정제된 생물을 선택해 보기로 하였다.

인간이 가장 적합할 것 같았다.

 

인간이되 어떠한 인간인가에 대하여 생각을 하고 있던 차 갑자기 옆에서 바람이 몰아쳐 오는 것이었다.

바람도 보통 바람이 아니고 기풍(氣風: 기운이 몰려나가는 것)이었다.

좀 더 생각할 여유를 가지고 지구를 살펴보려 하였으나 기풍이 거세게 밀어닥쳤다.

이미 반 정도는 지상의 환경에 적응된 터라 자신의 뜻대로 멈추어지지 않았다.

미르의 기체(氣體)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원래 자신의 몸은 기운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렇게 지상의 기운에 밀려 날아가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이 아니었다.

우주의 기운이 이렇게 자신을 밀고 나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제부터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우주의 섭리에 맡겨야 할 시점에 온 것 같았다.

전에 언젠가 수련에 들려 할 때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뜻은 소용없고, 한참을 어떠한 터널을 빠져나가듯 헤매 이다 보니 다른 세상에 와 있었던 것이다.

다른 세상이란 며칠이 지난 후 생각해 보니 그렇다는 것이지

그 때는 그것이 다른 세상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미르는 어떻게든 자신의 의지로 무엇을 해보려 하였으나 도저히 안 되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주에 맡기기로 하였다.

하늘의 기운에 동화되어 하나가 되고자 하니 마음이 풀어지며 편해져 왔다.

기풍은 점차 거세어지며, 지상의 모든 것을 말아 올리듯 불고 있었다. 사방이 어두워져왔다.

이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의 기운은 상당히 맑았다.

이렇게 기운이 맑으니 빛이 없이 어디로 가든 괜찮을 것 같았다.

기운에 동화되며 어둠의 나락에 떨어지기를 며칠동안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주변에서 무엇인가가 형성되는 것과 의식이 사라져 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렇게 자신을 잃고 수련에 드는 것인가 싶었다.

갑자기 메릴렌스가 생각났다.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몰랐다.

수련에 든 이후 자신의 별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음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자신의 별은 자신의 별만이 아니며 우주의 별이며,

수련에 든 이상 모든 것은 맡겨야 함을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자-. 수련이다. 지금부터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수련에 들자. 내가 선택해서 한 일이 아니었던가!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무엇인가가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주변 전체에 안개가 자욱이 서려왔다.

앞에 보이는 것이 뿌옇게 되며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색깔이 흑백에서 컬러로,

컬러에서 흑백으로 변하며 무지개 빛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고, 밝아졌다가는 어두워지는 이 색들 사이로 무엇인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수련에 들기로 한 이상 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앞에 닥치는 모든 것이 수련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이 과제를 해결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역량을 측정해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수련에 든다는 의미는 곧 시험이며,

이 시험에서 합격하여야 선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었다.

미르는 모든 것을 잊어야 함을 알았다.

이제 모든 것에서 떠나 전혀 새롭지만 두려움이 함께 하는 미래로 가야 할 시점임을 깨달았다.

마음을 정리하고 무엇인가 더 하여야 할 것이 있는지 되새겨보려는 순간

갑자기 앞이 환해 오며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