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의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은 노老작가 박완서 씨를 아십니까?
40세에 늦깍이로 문단에 데뷔하신 이래 좋은 작품을 많이 쓰셨는데,
저는 그중에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라는 단편소설이 참 감명 깊더군요.
63세에 발표하셔서 이듬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그런 좋은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또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4녀 1남을 두었는데, 딸들도 사랑하긴 했지만 외아들을 너무나 끔찍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잘생기고, 건강하고, 착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나무랄 데 없는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명문대 의대에 다니고 있었으니 또 얼마나 대견했겠습니까?
그런데 암으로 남편을 잃은 지 석 달 만에 사고로 아들을 잃었습니다.
26살 한창 나이에 아들이 명을 달리한 것입니다.
그분이 쓰신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수기를 보면 아들을 잃고 나서 겪은
방황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왜 내가 아들을 잃게 되었는지, 왜 하필 나인지 '한마디만 해 달라' 고
통곡하는 내용입니다.
남편을 잃었을 때는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았는데, 아들을 잃고 나니까
아무리 해도 마음이 달래지지가 않더랍니다.
딸들을 보면 '너희들이 대신 죽지, 하필이면 걔가 죽니?' 하는 마음까지
들었던 모양입니다.
너무 원통하고 아무리 누가 위로를 해줘도 소용이 없어서,
수녀원에도 들어갔다가 외국에도 갔다가 하면서 몇 년을 방황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는데,
그 내용이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 나옵니다.
소설을 보면 친구가 어딜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서는데,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산동네로 갑니다.
허름한 판잣집에 도착하는데, 그곳에 여고 동창생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끼고 있습니다.
아들이 멀뚱멀뚱 누워서 지내는데 악취가 코를 찌르고 도저히 봐줄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그 어머니는 아들을 너무나 애지중지하면서 이리 뒤집었다
저리 뒤집었다 합니다.
자꾸 뒤집어 줘야 욕창이 안 생기니까요. 머리도 빗겨주고, 밥도 먹여주고,
대소변도 다 받아줍니다.
그러면서 "이 녀석이 왜 살아서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가?
내가 이놈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하루 종일 지쳐 있다"고 투정을 합니다.
"빨리 죽어버려라!" 하고 악담을 하기도 하고요.
입으로는 욕을 하지만 마음은 사실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소설 속 주인공이 그 장면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기쁜 일이구나!
자기는 그런 아들도 없기 때문에....
저렇게 사람 구실을 못해도 좋으니 살아만 있다면....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
불구가 되었든 뭐가 어찌 되었든 살아 있다는 것,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 이상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살아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하신다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다'는 마음을 가져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지금 같이 있지 않다면
'서울 하늘 아래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는 마음을 갖고,
그분이 서울에 있지 않다면
'지금 이 시대에 지구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 1장 우주의 사랑이 있습니다. 2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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